제 목 : 말씀앞에 부끄러움을 내려놓는다 (모모모 교회 성도님의 간증) |
조회수 : 2273 |
작성자 : 로맨틱 |
작성일 : 2011-01-17 |
어머니는 6.25 동란에 첫 남편을 잃었다. 그후 남편과 사이에 하나 있던 어린 딸을 친정 언니에게 맡기고 재혼을 하셨다. 어머니가 재혼하셔서 내가 태어났다. 그런데 두 번째 남편, 그러니까 내 아버지마저 교통사고로 일찍 돌아가시고 말았다. 결국 어머니와 언니, 그리고 나 이렇게 처참한 여자 셋이 모여 살게 되었다. 교회 학교 교사였던 어머니는 평생 딸둘의 성이 다르다는 것을 부끄러워했으며, 드러날까 두려워했다.
나를 입양시킬까 어쩔까 의논하는 소리를 듣고도 못 들은 척하면서 울며 잠 든 적도 있었다. 그런데 당시 우리 식구가 세들어 살던 집 주인 아주머니가 밤이면 나를 불러서 성경을 일게 하셨다.
어머니는 딸들을 호적에도 올리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호적상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아이였다. 그래서 큰집 식구들이 오기라도 하면 집을 나와 빙빙 돌다 들어가곤 했다. 그렇게 벌레처럼 사람들을 피해 눈치 보면서 살던 나는 죽고 싶다는 생각도 여러 번 했었다.그렇게 나는 누구의 축복도 없이 잘못 태어났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그러다 언니가 결혼을 했다. 언니는 자신의 시댁 식구들에게 나를 "엄마가 어려운 중에도 동생을 입양해서 키웠다" 라고 소개했다. 그 당시에는 그런 사실조차 몰랐다. 조카들을 보러 언니네 갔을 때였다.
"애들 이모는 남이니까 조심하고 네 남편 잘챙겨라."
언니 시어머니가 소리죽여 하는 말을듣고는 정신이 쑥 빠져 달아나는 것 같았다. 그런말을 듣고 낙심해서 죽기 위해 약도 먹어 보았다.
"차를 받고 차라리 죽어버리자, 정말 개 같은 세상이다."
나는 목사들을 다 죽여 버리고 싶었다. 믿는 척하면서 자기 자식 하나 품어 주지 못하고 내팽개친 믿는식구들을 보며, 교회만 보면 이가 갈릴 정도 였다.
교회는 나갔지만 성경적인 가치관이 없었기 때문에 "내 주제에" 라는 생각으로 불행한 내가 불행한 상대를 택해 불행한 결혼 생활이 시작되었다. 남편의 술에, 무능력에, 15년 동안 생계를 책임져 온 고달픈 생활에 더이상 버틸수가 없었다. 그 상황에서는 헤어지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이혼한 지도 8년. 누구라도 "더 참고 살지" 라고 말했다면 그 사람을 결단코 쳐다보지 않았을 것이다. 나의 믿음으로는 살아남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 이혼 뒤 남편은 단 한 번도 다섯 살, 일곱 살이었던 아이들의 안부조차 묻지 않았을 정도니까 말이다.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 했던 나는 밤에 아이들끼리만 놔둘 수가 없어 혼자계신 친정 어머니에게 같이 살지 않아도 좋으니까 가까이라도 살자고 사정을 했지만, 어머니는 자기에게 절대 기대지 말라며 거절했다.
아들이 남편의 얼굴을 닮은 것만 봐도 저아이들이 남편과 같은 짓을 하면 어떻게 하나 두려움이 엄습했고, 우울증은 재발해서 나를 괴롭혔다. 이 모든 것이 내가 죽어야만 끝날 것 같았다. 들여다볼수록 싫은 뿌리이기에, 더욱더 그 뿌리를 잘라 버리고 싶었고, 더 이상 숨기고 살면서 아닌 척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교회에 대해 실망하고, 자기 자랑만 하는 이들과의 교제가 싫어서 헤메던 내가 절망으로 도저히 일어설 수 없을 것만 같던 즈음, 새벽에 교회로 달려가 매달렸다. 형편없고 작디 작은 나를 끝까지 포기하지 아니하시는 주님이 반드시 나를 들어 나와 같은 자를 위로 하시며, 말씀으로 깨닫게
하실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곧이어 큐티를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말씀으로 회복시켜 주시는 주님이 위로를 맛볼수 있었다. 그때 주님은 나에게 유월절 문설주 의 어린 양의 피를 기억하게 하셨다. 돌이켜보니 어둠의 시간들 속에도 주인집 아줌마를 통해서 말씀을 듣게 하신 것이 감사했고, 초등학교 입학식에 찾아와 연필 한 다스를 내밀던 친척 언니, 꽁꽁 언 손을 잡아 주던 몇 번 안 되는 따뜻한 손길들을 기억할수 있었다.
요즘은 아침에 주님이 깨우시면 일어나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교회 생활이 너무도 신나고 좋기만 하다. 늦었지만 열심히 공부해 서 자격증도 땄다.
뒤늦게나마 이런 쓴 뿌리를 내놓는 이유는 자유하고 싶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믿고 나서 보니 어머니의 두 번의 사별도, 언니와 성이 다를다는 것도 어느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식구는 평생 교회를 다녔어도 자유하지 못한 것 같다.
말씀을 보고 가치관이 달라지면서 언니와 형부가 떠올랐다. 모든 사람이 믿어야 하지만 그 사람들은 믿으면 안 된다고 생각할 정도로 용서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말씀으로 꾸준히 변화하고 보니 죽기 전에 언니에게 찾아갈 수 있는 것이 감사했다.
며칠 전 언니의 생일날, 20년 동안이나 미워하며 보지 않았던 언니에게 노란 프리지아 꽃을 사 들고 찾아갔다. 찾아가는 발걸음이 나도 모르게 벌벌 떨렸다. 그렇게 두려운 마움으로 찾아갔는데 언니가 눈물을 글썽이며 맞아주었고 조카들이 반겨 줘서 감사했다.
이제 어머니도 세상 떠나기 전에 자유함을 가지셨으면 한다. 50년 동안 교회를 다녔는데 50년 동안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주님은 말씀으로 해결해 주셨다. 말씀의 위력은 이처럼 대단하다. 말씀으로 내 인생을 돌아보게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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