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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영성 발달 과정과 치유에 대하여(정원목사님 글) 조회수 : 1968
  작성자 : 콘돌 작성일 : 2009-03-14

치유나 은사 등 성령님의 사역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오해나 공격이 있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사람들은 관념상의 하나님에 대해서는 좋아하지만 그 하나님이 실제로 가까이 오시면 무시하거나 대적합니다. 하나님이 몸을 입으시고 직접 오셨을 때 십자가에 못 박은 것처럼,영으로 가까이 임재하시면 싫어하는 것입니다.그러한 공격의 배후에는 무지도 있고 어두움의 영들의 장난도 있습니다. 어두움의 영들은 피상적인 하나님에 대한 언급에 대해서는 고통을 느끼지 않지만 실제로 그 영이 가까이 오시면 심각한 고통을 느끼기 때문에 그 영의 활동을 제지하고 싶어 합니다.그래서 실제적인 전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입술은 주님께 가깝지만 그 마음은 주님과 멀리 있다면 그러한 이들은 자신의 위치나 입장에 의하여 주님의 대적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이것은 주님 당시에나, 교회사에나 항상 있었던 보편적인 현상입니다. 또한 치유나 사역에 대한 공격들은 정당한 이유로 인하여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것은 오늘날의 치유나 여러 사역들이 온전히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도 많지만 또한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기법이 섞여있는 것도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치유 기법 가운데 뉴에이지적인 섞임도 많고 사람의 정신력에서 온 힘도 적지 않으며 믿음의 시인보다는 암시에 가까운 것도 적지 않습니다.성경말씀이라고 하더라도 거기에 믿음을 섞지 않고 암시적으로 사용할 수도 있으며사실 그러한 일이 오늘날 많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섞임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분별과 조언이 필요하다고 할 것입니다. 
치유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대부분 사람의 관점은 육체의 치유와 마음의 치유에 대한 것일 것입니다. 그것은 치유의 기본적인 요소일 것입니다. 다만 그것은 치유의 한 부분일 뿐입니다.
사람의 영적 성숙과 관점의 성장과 변화에 따라 무엇이 진정한 질병이며 무엇이 진정한 치유인 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관점이 있을 것입니다. 제가 보는 관점에서, 그리스도인의 영적 성장은 이스라엘 백성이애굽에서 광야를 거쳐 가나안으로 나아가는 것과 같이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그 성장 상태에 따라 어떤 이들은 애굽에 있고, 어떤 이들은 광야에 있으며 어떤 이들은 가나안의 상태에 있습니다. 질병이나 치유에 대한 관점도 그 사람의 영적 위치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입니다. 
애굽은 영적 유아기로서 아직 영혼이 눈을 뜨지 못하고 겉사람, 육체로 살 때의 상태입니다. 이 때는 각종 기적이나 능력, 은사, 등 육체에 임하시는 성령의 은사와 역사들을 경험하기는 하지만 아직 영의 세계를 잘 모르기 때문에 육신적이고 물질적이며 세상적인 관점으로 살 때입니다. 크고 위대한 것을 좋아하고 많은 소유를 좋아하고 명예나 외적인 성공을 좋아할 때입니다.겉의 껍질은 신앙 안에 있지만 아직 가치관은 세상적인 것에서 그리 변화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편한 삶, 고통 없는 삶을 좋아하고 본능의 수준에서 살게 됩니다.이 상태에서는 아직 죄에서의 해방이나 악습에서의 자유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입신을 하고 천국에 다녀올 수는 있어도 깨어나면 여전히 마찬가지의 삶을 살게 됩니다. 
광야는 겉사람의 실제적인 죽음을 경험하는 때이며 조금씩 실제적인 내면의 영성이 깨어나는 때입니다. 이곳은 영적 메마름을 경험하고 자기 한계에 부딪치는 때이며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갈5:24],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갈2:20]] 와 같은 말씀이 실제적으로 이루어지는 시기입니다.광야의 상태에 있을 때는 세상적인 가치관이 많이 사라져서 좁은 길을 가기를 원하지만 아직 영의 실제를 누리지 못하므로 메마름과 고통이 가득한 시기입니다.
무사히 광야의 십자가와 죽음을 경험하고 통과하면 가나안에 입성하게 되며
실제적인 하나님의 영광을 가까이 누리고 경험하게 되며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무엇인지 경험하고천국의 실상을 누리는 단계입니다.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인 장정 60만명 중에서 가나안에 입성한 사람이 불과 두 사람인 것을 감안하면 이상태에 있는 이들은 [아무리 지금이 은혜의 시대라고 하더라도] 그리 많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희락의 상태는 그리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실제적인 영광의 누림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하나님의 의도입니다.지금 대다수의 사람들이 겪고 있는 낮고 어둡고 비참한 영적 상태가 하나님의 목적이 아니며 그리스도인들이 도달하는 목적지가 아닌 것은 분명한 것입니다. 
각 위치에 따라 치유의 방향이나 관점이 다를 것입니다.
애굽 상태에서는 눈에 보이는 육체의 치유나 마음의 치유가 치유의 주된 대상일 것입니다. 이 때는 눈에 보이는 것과 자아적인 만족이 가장 큰 기쁨이며 그러한 관점의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는 은혜의 시기이므로 가장 많은 치유와 역사와 기적이 이루어지는 시기입니다. 초신자가 많은 곳에서는 가장 많은 기적과 역사가 이루어집니다.간단하게 언급하자면, 죄악이 관영한 곳, 어린 신자가 많은 곳에는 많은 기적과 응답의 역사가 있습니다.그것은 애굽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낮은 영적 상태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애굽을 탈출하는 과정에서 애굽이 초토화되고 가장 많은 기적과 역사가 일어난 것을 보아도 분명합니다. 초신자들은 무슨 병이든 기도하면 낫고, 무슨 기도를 하던 응답이 쉽게 임하는 것이 보통입니다.이 때는 은혜의 시기이기 때문입니다.신유에 있어서는, 믿음에 대해서 제대로 배우고,십자가와 보혈에 대해서 바른 가르침을 받고 제대로 깨닫게 되면많은 병들이 낫고 기적과 역사가 일어나는 시기입니다.  
신자가 조금 성장하여 광야에 가면 기도가 잘 응답되지 않으며 병이 잘 낫지 않습니다.애굽에서는 마음을 조금 위로하면 회복되고 기쁨을 누리지만 광야의 상태에서는 아무리 내적 치유를 해도, 아무리 위로를 받아도 점점 더 비참해지고 곤고해집니다.사랑을 받고 격려를 받을수록 외로워집니다. 이는 유아기가 지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본격적인 훈련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첫 단계에서는 믿음으로, 은혜로 모든 것이 주어지지만,여기서는 자기 애정과 고집과 완악함 들이 십자가에 못박히지 않으면 절대 통과할 수 없으며 마치 늪에 빠진 것 같아서 몸부림을 칠수록 고통은 더 심해지며 더욱 더 깊은 늪 속으로 빠져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단계에서는 질병이든 환경의 고통이든 무조건 오직 굴복하고 순종해야만 고통이 소멸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응석이 통하지 않고 오직 순복해야 합니다.화를 내고 원망할수록 고통의 기간이나 상태가 길어지고 커집니다.
단계의 질병은 몸과 마음의 질병이지만,
이 단계에서 질병은 하나님께 굴복되지 않은 마음 자체가 질병입니다. 제 멋대로 하는 삶이 바로 중병에 걸린 삶인 것입니다.그러므로 이때는 작정기도하고 금식기도하고 세계적인 사역자에게 안수를 받고 온갖 난리를 쳐도 병이 낫지 않습니다.[믿습니다]를 수 천번 고백해도 낫지 않습니다.이때는 [주님, 저에게서 무엇을 원하십니까? 이 병과 고통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하고 묻고 엎드려야 합니다. 그래야 회복이 시작됩니다.  첫 단계에서 질병은 몸에 나타나고 불편한 것이 질병이지만 두 번째 단계에서 질병은 주님께 순복하지 않고 제멋대로 하는 모든 것이 질병입니다. 세상적인 꿈, 야망, 잘난 척, 거짓.. 그 모든 것이 재앙이고 질병입니다. 그 자신이 깨닫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의 영은 심한 중병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것을 다루시기 때문에 순복하지 않고는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오늘의 신자들이 첫 단계에서 많은 은총을 입은 후 두 번째 단계를 통과하지 못하고 세상의 삶을 마치는 것은 몹시 안타까운 일입니다. 세 번째 단계는 주님과 온전한 연합을 이루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여기서 질병이란 주님과 연합되지 않은 순결하지 않은 심령상태, 마음 상태입니다. 그것은 처녀가 결혼 전에는 여러 남자를 쳐다보아도 죄가 되지 않지만 유부녀가 된 후에는 다른 사람을 마음에 두었을 때 그것이 간음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이때는 주님께서 그의 신부가 조금이라도 세상적인 마음을 가지는 것을 내버려두지 않기 때문에 많은 고통을 겪게 됩니다. 죽음과 같은 많은 통증과 희한한 증상을 갖게 되지만, 이러한 고통들은 본인에게는 죽을 정도로 고통스럽지만 병원에 가면 아무런 이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것은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현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오직 신부가 신랑에 엎드려 그 순결함을 회복할 때 회복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질병이나 치유는 자기의 영적 위치에 따라 시각과 관점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첫째 단계에서 질병은 육체와 마음의 불편함이지만
둘째 단계에서 질병은 자기중심적인 삶 자체입니다.
그리고 셋째 단계에서 질병은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과 갈망의 부족 자체가 질병입니다.
간절하게 주를 붙잡지 않는 것, 기도하지 않는 것, 예배하고 주를 바라며 높이지 않는 자체가 아픈 것이며 심한 중병에 걸려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에 대하여 고통을 느끼는가 하는 것은 위치와 입장과 성장상태에 따라서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질병이나 치유에 대해서도, 처음에는 물질적이고 외적인 치유가 필요하지만 점차로 더 깊은 치유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영이 성장하여 자신의 깊은 질병의 상태를 보게 된다면, 자연히 더 깊은 치유를 갈망하게 될 것입니다.
첫 단계에서는 육체과 마음이 치유를 받고 고통이 없는 삶을 살기를 원하지만, 두 번째 단계에서는 그 영이 깨어나 주님의 통제하심 안에 들어가는 삶을 살기를 바라게 되며,세 번째의 단계에서는 그 영이 온전히 주님과 연합되어 세상 애정의 바이러스에서 온전히 벗어나기를 기대하게 될 것입니다. 
십 여년 전 경기도의 한 기도원에서 영성수련회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외국에서 당시 유행하던 영성의 흐름을 접목시키려고 많은 사역자들이 왔습니다. 거기에 참석을 하였다가 우연히 총신대원 출신의 동기 목사들이 여러 명 온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3박 4일의 기간은 다 끝나가고 마지막 밤이 되었습니다. 동기 목사들은 기대하던 것을 얻지 못하여 몹시 속상해하였습니다. 백인 사역자들은 영성사역을 하는 분들이라도 지나치게 합리적인 면이 있어서 영의 흐름이 자연스럽지 않고 한국의 정서와 잘 맞지 않는 면이 있어서 이들은 기대했던 은혜를 얻지 못하였습니다.  동기목사들은 내가 그곳에 있는 것을 보고 우리끼리 밤에 집회를 하자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밤에 대 여섯명의 동기들이 작은 방에서 같이 모여 기도모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나는 같이 기도하면서 그들이 성령세례를 받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기도의 흐름과 영의 흐름에 대해서 몇 가지 조언을 덧붙였습니다.다들 방언을 받고 아주 좋아하였습니다. 한 목사는 지난 밤에 꿈에서 방언을 했는데, 그 꿈이 이루어졌다고 몹시 기뻐하였습니다. 그 목사는 신유사역에 관심이 많고, 또 그러한 사명이 있는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신유사역의 원리와 흐름의 방식에 대해서 조금 덧붙이고 하나님의 통로가 그러한 되기 위한 기도훈련들, 손을 사용하는 방법.. 등에 대해서 조언을 하였습니다.
[신유사역에 있어서 손의 사용은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주님도, 사도들도 대부분 손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는 몹시 기뻐했고 교회에 돌아가서도 계속 기도와 훈련을 반복하였습니다. 그는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많이 경험하게 되었고 치유사역에도 많은 성과를 이루었고 교회는 부흥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나중에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 그는 허리를 쓰지 못하여 앉은뱅이 상태로 있는 처녀를 안수하고 기도해주어서 그녀가 일어나 걸을 수 있게 되었는데, 그녀는 건강이 회복되자 결혼을 하고 교회를 떠났고 신앙생활을 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그 사건으로 인하여 몹시 낙담한 것 같았습니다. 그러한 경우 그녀는 치유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오히려 나았을 것입니다. 나는 그가 크게 실망하여 치유 사역을 그만 두었는지, 그 후의 일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이 이야기는 치유가 단순히 육체의 치유, 마음의 치유, 겉사람의 치유에 머물러 있어서는 곤란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치유의 방향과 중심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단순히 겉사람의 회복에 두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구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오히려 그 반대이며 겉사람은 후패하지만 속사람은 날로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질병이란 그리스도를 갈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감사하지 않는 것이며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육체에 나타나는 질병은 질병의 작은 그림자에 불과한 것이며 작은 불편에 불과한 것입니다. 천국 백성인 그리스도인이 자기 본향인 천국을 사모하고 갈망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심각한 영의 질병을 앓고 있는 것입니다. 육체의 치유는 필요합니다. 마음의 치유도 필요합니다. 낙심하고 절망하며 지치고 피곤하고 힘든 이들에게 치유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며 아름다운 것입니다. 주님이 계시는 곳에는 항상 위로와 치유와 회복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치유는 더 깊은 곳으로 발전해가야 합니다.그리스도를 향하여, 더 깊은 내면의 충만한 만족과 근원적인 웰빙, 행복을 누리는 쪽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처음에는 육체의 치유에서부터 시작하지만 점차로 근원적인 치유를 향하여 가야 합니다. 온전한 치유가 이루어질수록, 온전한 치유에 가까워질수록 우리는 더욱 더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게 될 것이며 주님과 천국에 더욱 더 가까워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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