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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가? " (롬 16:1... 조회수 : 1760
  작성자 : Joshua 작성일 : 2010-08-04
 

*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가? 롬 16:17-20

 

“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교훈(원문=배운 교훈)을 거슬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
   이 같은 자들은 우리도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의
   배만 섬기나니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너희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지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를 인하여 기뻐하노니

   너희가 선한데 지혜롭고 악한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평강의 하나님이 속히 사단을 너희 발 아래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찌어다 "

 

판단하는 죄에서의 해방을 주제로 하여 선악과를 토해내고 타인들과의 영원한 화평을 주제로

설명하는 로마서에서 16장은 총체적인 결론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모든 사람들과 화평을 목적으로 하는 입맞춤과 포옹을 강조합니다.  

 

로마서를 간략하게 설명하면 보이는 행동에 대한 평가로 타인에게 비난이나 비판을 목적으로

하는 말이나 행동 등을 포함하는 모든 마음속의 생각까지 모두 하나님께 드림으로 타인들의 개념에 자신들을 비난하는 그 어떤 것도 발견되지 않는 사람이 되라는 것을 목적으로 기록된 것이 로마서

입니다.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배운 교훈’이란 로마서 1-15장까지 기록된 판단하는 죄에서 떠나 타인을 판단하는 자나 다툼 그 안에서 있는 모든 것을 버리고, 세상 사람 모두를 마음 즉 자신의 영의 문제인

마음에 존재하는 악을 버리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일군과 하인으로 인정하는 믿음 안에서 항상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세상으로 보게 하는 것을 믿으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교훈입니다.

 

또 분쟁은 ‘디코스타시아’로 ‘불화 알력 구분 선동’의 뜻을 가진 말로 분쟁을 일으킨다는 것은

그 원인이 교훈을 거스르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의 성품으로 변할 수 없다고 우기는 일과 그 성품이 하나님의 성품으로 변하기 위해서는 타인들의 괴롭힘이 있는 세상에서의 생활 속에서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 때문입니다.

 

이는 자신을 괴롭게 하는 사람들을 향해 항상 도전 정신을 가지고, 자신의 말과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함과, 타인의 말과 행위보다 자신의 생각이나 사고나 방법이 항상 우위에 있음을 과시

하기 위한 소 영웅심을 바탕으로 타인에게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말과 행동이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교회나 가정 사회 안에서 편을 가르고, 구분 짓게 하고, 서로 알력이 생기게 하며, 불화

하도록 선동한다는 의미로, 행동의 기본 바탕인 마음의 문제를 도외시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 ‘거치다’는‘스칸달톤’으로 ‘덧, 올가미, 불만, 죄의 원인, 함정, 죄에 빠짐, 죄를 짓게 함, 거침

거리’라는 뜻 입니다.

 

즉, ‘거치는 자’라는 것은 자신 스스로도 죄의 올가미에 걸려 있는 줄도 모르고 불만과 불평이

있는 것이며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죄의 올가미에 걸리도록 유도하는 거침거리가 되어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죄와 사망의 법 아래로 끌고 들어가 마음에서 율법을 따르도록

미혹하는 죄인 사단의 지배를 받게 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떠나라’는 말은 ‘피하라, 멀리하라, 떨어져 나가라’는 것으로 육신적으로는 그 사람과 격을 두고

행동하라는 것으로 멀리도 가까이도 아닌 적당한 거리를 두라는 것이지만 영적인 의미로는 비성경적인 타인의 교훈을 마음에 받아드리지 말고 자신의 마음에 있는 인본주의적인 성격이나 성품들도 버려버리라는 하나님의 요구로 믿어야합니다.

 

그리스도에 관한 설명을 마음 안에서 지고 가야 할 십자가로 설명하고 마음 안에서 올라가야 할

천국을 설명하는 성경을 바탕으로 하면 우리 주 그리스도에서 ‘그리스도’는 지성소 교회가 마음에

지어지길 위해 성막의 문과 같은 교회부터 시작하는 사람에게 부으시는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을

상징한다고 하겠습니다.

 

즉‘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으로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성전으로서의 지성소가 되는

믿음의 때를 소망하며 삶에서 자기 성품과의 싸움을 시작한 사람이라는 뜻이 됩니다.

또 같은 의미에서 ‘사단’은 ‘싯딤, 아카시아, 때리다, 학대하다, 죄, 모반, 벗어남, 모반, 옆으로 가다, 괴롭히다, 채찍질하다, 매질하다, 박해하다, 증오하다, 반대하다’라고 하는 뜻을 기본으로 ‘고소자, 고발자, 대적자,선을 대적하는 두목’ 등의 뜻을 가지고 있어 사람들 특히 신앙인 사이에서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도록 육신의 행동이나 말을 보면서 사람 중심의 행동을 요구하는 모든 것을 사단의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역사적인 사건으로서의 위대하신 하나님의 기적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죽음 부활 승천은 믿어 교회에 열심히 출석하지만 사람들과 어울리는 사회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온전한 화평을 이루지 못하는 신앙인은 사단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으로 아직 자기 중심으로 살아가는, 마귀적인 성격을 버리지 못한고로 자신의 의지로 살고 있는 중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본문은  로마서의 모든 내용과 일치하는 삶을 위한 마음과 말을 하나로 맞추지 못하고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서로 거치게 만드는 자들에게서 떠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전달하므로,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믿는다고 하면서 교회에 다니는 우리들끼리 예배하는 교회 안에서도 있는 일이라는 것을 지적하시는 것입니다.

 

실타래를 풀려면 실마리를 찾아 당겨야합니다. 
즉 실타래를 보면서 아무 것이나 당긴다고 실타래가 풀리는 것이 아니며 또 그 실마리를 찾겠다고 아무 것이나 잡아당긴다고 그 실타래가 풀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 전체의 요구는 육신의 행동에 관한 법처럼 보이지만 그 실마리는 육체를 지배하는 정신 이전에 있는 성품을 바꾸어 사람의 마음이 행동하게 할 법으로 그 법을 스스로 지키라는 것이 아닙니다.

 

즉 사람의 마음의 성품을 바꾸는 것도 또 정신을 바꾸는 것 모두 하나님만 바꾸어 주실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을 믿고 하나님께 매달리라고 로마서 전체에 하나님은 분명하게 기록하셨고, 또 성경으로 온전한 하나님의 성품을 가지고 마음이 하늘을 사는 삶을 요구하셨습니다. (골 3:1,2)

 

"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

 

그러나 마음으로 지키는 법인 자신을 발견하고 하나님께 드림으로 고침을 받는 마음으로 지키는

법으로서의 "생명의 성령의 법"을 모르는 많은 분들이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다 지키며 살 수 없다. 다만 그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는 것뿐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사람은 하나님이 될 수 없다고 말하므로 우주를 통치하시면서 사람을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 하나 바꿀 수 없는 분

이라고 매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는 타인을 판단하는 죄를 범한 그 근본을 선악과를 먹은 아담에 그 원인을 두고 아담이 범한 선악과를 토해 내야 한다고 강변하고 있습니다. 선악과를 먹인 사탄의 영으로서의 뱀은 너도 하나님처럼 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결국 하나님처럼 한 인간은 아무도 없고 하나님께 죄인이라고 정죄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행동이나 우리의 의도는 사람이 어떤 인간적 의지를 가지고 있는가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행동으로 드러나는 그 사람속의 마음 상태를 보시는 하나님이 정하신 철저한 잣대에 의해 그 사람의 영적인 의지를 정하십니다.

 

지금의 교회현실에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는 교계는 <신학의 재정립이다, 교리의 문제다>라고 지적을 하며 성경대로 살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자 다방면의 노력을 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온 우주 창조의 순간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언되어 지금까지 이어오는 기독교의 역사에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의지만 있었지 실제로 마음 그 자체에서 사람을 판단하지 않고

화나 노나 분이 나지 않고, 타인으로 인해 상처받지 않고, 슬픔의 눈물이 없고, 스트레스가 없고,

모든 일에 감사하며 모두에게 고마워하며, 자신의 마음이 천국이 되는 법을 가르치지 못했고

그렇게 사는 사람도 거의 없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눅 18:8)

 

"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 (눅 18:8)

 

우리 기독교의 교리는 육체를 기쁘게 하고 사람을 즐겁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영을 살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영을 살리자면 그 영을 담고 있는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의 성품으로 변화하는 도를 보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신과 함께 하는 영인 프뉴마티(신령)로 살리기 위하여, 마귀에게 미혹되어 동물적인

감각에 의해 살아가는 혼인 프쉬케를 지옥에 던져 죽일 수 있는 유일한 신으로서의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몸은 죽여도 영혼(프쉬케)를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 말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마 10:28) 기억한다면 우리는 이제 로마서의 말씀과 같이 육신의 방법대로 살고자 애쓰고 싶은

욕구를 버려야 합니다.

 

"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 (마 10:28)

 

하나님의 말씀대로 본다면 지금까지 교회의 모습에서는 창조의 역사 속에서 설계자로써의 우주의 주관자를 믿은 것이지 마음의 성품까지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믿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합니다.

 

우리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성경을 얼마나 알고 모르느냐의 문제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른 의, 거룩한 의지를 드려 하나님을 세상 보다 더 사랑하는지요?
아니라고 인정하신다면 문제는 간단합니다.

 

그러나 변명이 따르고 사람들이 주는 문제에서 원망거리나 불평거리가 있다면, 또 보편적인 사람의 방법을 앞세워 사람들의 질타의 소리나 비난이 두렵다는 생각이 앞선다면 하나님의 법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법을 따르는 어린 아기와 같이 젖만 달라고 하는 신앙인이나 젖만 먹이려는 어리석은 지도자일 뿐입니다. (고전 3:1,2)

 

"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

 

이렇듯 지금의 교회가 거의 그런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남들이 아니라 자기 자신입니다.
자신의 행동 이전에 생각을 보고 그 생각 이전에 마음을 보시기 바랍니다.
안 된다면 그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영의 눈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사람을 두려워하며 사람의 법을 지키려고 애를 쓰는 신앙인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법을

지키려고 하는 것인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것인지?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하시길 간절히 기도 드립니다. 아멘!

 

"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 (고전 2:14)




출처- 깨어있는 집                글쓴이-흰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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