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광장 > 자유게시판
  제  목 : 방황하는 목자, 방황하는 양떼, 방황하는 교회(2) 조회수 : 1586
  작성자 : Joshua 작성일 : 2010-09-06

아니, 오히려 속된 것이 거룩한 것을 압도하는 상황 가운데 처하게 되었다.

 

언제쯤 교회 안에서 충실한 책망과 경고의 나팔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인가?

누가 외로움 속에서 진리대로 살아가는 진짜 양들을 격려하고,

죄와 세상을 교회 안으로 끌어들이는 거짓 양들을 책망할 것인가?

 

과거에 예례미야 선지자가 배도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인기없는 기별을 전했던 것처럼, 오늘날 누가 패역한 양떼들에게

철저한 부흥과 개혁을 촉구하는 인기없는 기별을 전할 것인가?

 

거듭나지 않은 양떼들은 언제나 부드럽고 평화로운 설교만을 요구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리보다는 철학이나 우화나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원한다.

 

어떤 목자가 그들에게 성령의 음성을 들려줌으로써

그들을 회개의 길로 인도할 것인가?

선한 목자는 우둔한 양떼들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서,

하나님의 진리를 듣기 좋은 것으로 깍아 내리거나 다듬지 않는다.

 

 

사단의 전략!

 

사단은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라서 일어날 정도로 갑자기 일하지 않는다.

사단은 거대한 죄와 배도를 교회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매우 여러 단계로 된 작은 타협의 계단들을 만들어 놓는다.

 

그는 교인들에게

“다른 집사님이나 장로님들도 다 그렇게 하니까

나도 그렇게 해도 괜찮을 거야”라는 생각을 하도록 유도한다.

 

사단은 화장이나 목거리와 같은 장식물에 대해서,

어떤 목사나 교인이 용기를 가지고 일어나서 이야기 할 때에

그를 극단적이고 사랑이 부족한 율법주의적인 사람이라고

몰아부침으로써 참된 사랑을 왜곡시킨다.

 

사단은 교인들이 죄와 세속에 대하여

“아주 조금은 괜찮아. 그 정도는 괜찮아”라는 말을 하도록 자극함으로써,

결국에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를 성취시킨다.

 

사단은 여인들이 입는 치마의 길이를 무릅으로 끌어올렸으며,

이제는 허벅지가 허옇게 보이는 치마를 입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러 나가도록 양떼들을 훈련시키는데 성공하였다.

 

양떼들이 입술과 손톱을 빨갛게 물들이고 교회에 와도,

전혀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못할 정도로 교회는 세상에 익숙해져 있다.

유행과 세속의 사교장이 되어버린 교회의 숫자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이제, 사단은 교인들로 하여금 돈이 가지고 있는 위력이

교회 안에서도 통하는 모습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도록 만드는데에도 성공하였다.

 

돈많은 집사와 돈많은 장로들이 하나님의 교회를

세속적인 아이디어로 이끌어가도 아무도 거기에 대해 말하지 못하게 되고 말았다.

 

만일 우리의 눈으로 세속과 유행과 돈을 이용하여

교회 전체를 암흑 속으로 끌어 가고 있는 사단의 계략을 볼 수 있다면,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서 지금처럼 느긋하고 당연한 듯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교회 안에 있는 세속과 죄로 인하여,

우리 가족들의 영혼이 영원히 잃어버린바 되고 있는 모습을

분명하게 볼 수 있다면, 우리는 죄에 대해서 지금보다 훨씬 강력하고

용감하게 대처할 것이며, 죄와 세상에 대하여

동일한 책임감과 경각심을 가지고 연합하여 일어서게 될 것이다.

 

사단이 세워놓은 최고의 목적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세상의 요구에 민감하게 만들고,

죄에 대해서는 무감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사단은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하지만,

세상이 요구하는 바에 쉽게 굴복하고 타협하지만,

그리스도의 뜻과 그분의 진리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양떼들을 보면서 만족한 미소를 짓고 있다.

 

무엇이 목자들과 양떼들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우리는 지금까지 교회가 가지고 있는 병의 증세들을 살펴보았다.

유행과 세속, 화장과 사치, 쾌락, 죄에 대한 무감각, 세상적인 사고방식 등등.

이러한 모든 문제들이 지금 하나님의 교회가 겉으로 나타내고 있는 증세들이다.

 

그런데, 마땅히 거룩하고 경건해야할 목자들과 양떼들에게

왜 이러한 문제들이 생기게 되었을까?

 

우리는 종종 병의 증세만을 쫓아다니다가

질병의 진정한 원인을 놓치는 실수를 하기 쉽다.

무엇이 진짜 핵심 원인인가?

 

그것은 바로 변질된 복음이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율법의 관계를 오해하고 있다.

그들은 사랑과 율법을 분리시킨 다음에,

사랑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폐하여 버리려고 애쓴다.

 

그러나 사랑은 율법을 대적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완성하는 것이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사랑율법의 완성이니라.”로마서 13:10.

 

여기서 바울은 참 사랑을 가진 자마다

율법을 완전히 준수하는 삶을 살게 된다는 진리를 선포하고 있다.

 

바울의 선언은 율법을 범하는 죄된 생애를 살아도,

사랑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거짓복음의 위험을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다.

 

하나님의 율법에 기록된 도덕적 원칙들이 무시된 무분별한 사랑이

구원의 조건으로 받아들여짐에 따라서, 죄와 세상에 대하여

승리하는 경건한 생애에 대한 관심은 사라져 가고 있다.

 

물론, 구원은 아무런 댓가도 없이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

거저 나누어지는 것이지만, 안타깝게도 하나님의 구원을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숫자는 너무나 적어 보인다.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양떼들이 구원받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하는 모든 사람들이 구원에 이르는 것은 아니다.

 

결국, 최후의 심판날에 가서는, 모든 양떼들은

자신들이 살아온 삶에 따라 참 그리스도인과 가짜 그리스도인으로 나눠지게 된다.

 

하나님의 진리에 충성하고 이웃을 자신의 몸처럼 사랑하는

경건한 생애를 살지 않는 사람들은 거짓 양들이라는 선언을 듣게 될 것이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어버지의 뜻대로 행한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 7:21)

 

예수께서는

비록 많은 헌신과 열심으로 주의 사역을 하였지만,

당신의 율법을 범하는 죄된 생애를 살았기 때문에

멸망에 들어가는 사람들에 대해서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책망하실 것이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멀리 떠나가라 하리라.” 마태복음 7:22~23.

 

그들의 신앙에는 원칙과 도덕이 결여된 인간적 사랑만이 있을 뿐,

하나님의 법에 불순종하는 부도덕한 생애를 살았다.

 

그들은 영생의 면류관을 얻기 위해서

열심히 교회활동과 주님의 사업에 참여하였지만,

희생과 극기의 십자가를 지고 세상과 원수되는 삶을 살지 않았다.

 

그들은 주께서 지정하신 좁은 길을 걷는 대신에,

육체가 요구하는 바에 따라 대다수의 군중과 함께 넓은 길을 따라가기로 선택하였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또 하나의 진리가 있다.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경건한 생활을 살지 못해도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구원은 보장됩니다”라는 달콤한 설교가

수많은 양떼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신앙으로 받아들여 지고 있다.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굳게 세우느니라.” (로마서 3:31)

 

여기서 바울은 참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율법을 굳건하게 지키는 삶을 산다는 진리를 선언하고 있다.

 

믿음과 율법은 서로 경쟁하거나 싸우는 것이 아니라,

서로 보충하고 협조한다.

 

참 믿음을 통하여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는 열매를 맺는 생애를 살게된다는 가르침이야말로,

믿음과 순종과 구원에 대한 가장 균형있는 진리이다.

 

그러나 잘못된 오류에 빠져 있는 양떼들은

하나님의 영께서 양심 속에 들려주시는 진리와 의에 대한 확신을

계속해서 거절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은 하나님의 구원 안에 있다고 착각하게 된다.

 

과거 중세기에서부터 시작된 잘못된 오류들이,

이제는 교회 안에서 진리를 누르고 승리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하여 진리대로 살고, 하나님의 율법을 존중하는

경건한 생활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행위에 의존해서

구원을 얻으려는 사람들이라는 핀잔을 받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율법이 무너짐에 따라서,

사람들의 신앙과 사상은 방종의 길을 달리게 되었으며,

신앙과 사상이 무분별한 감정적 사랑에 오염됨에 따라서,

각종 세속과 유행과 부도덕이 교회 안으로 밀려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바로 이것이 교회가 급속하게 세속화되어 가고 있는 이유이다.

 

그러므로 기억하라.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율법을 무너뜨리는 자마다,

방종과 세속의 길을 걷다가 결국에는 사단이 속삭이는

논리와 이론에 미혹되어서 어둠 속으로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

 

 

자료출처 : 예수쟁이 (프.연.모)

 "

전체댓글 0

댓글 쓰기0/200
입력
  이전글 : 방황하는 목자, 방황하는 양떼, 방황하는 교회
  다음글 : 너무 쉽게 드리는 기도
이전글 다음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