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광장 > 자유게시판
  제  목 : 복음은 아주 가까운 것입니다 조회수 : 1410
  작성자 : 순천자 작성일 : 2009-12-09

가까운 복음

복음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육체를 입으시고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우주의 주인이신 그 분이 사람과 같이 교제하시고 사랑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그는 사람들을 사랑해주셨고 진리를 가르치셨으며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그를 믿고 영접하는 자는 구원을 받으며 그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간단한 복음의 요약입니다. 복음은 아주 가까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주 멀리 떨어져 계신 곳에서 손을 흔들며 “나는 너희를 사랑한다.”하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직접 육체를 입으셨으며 사람이 사는 곳까지 내려오셨습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이해하고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하나님은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셨지만 이미 그것은 2천 년 전의 일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중동의 작은 땅 이스라엘에서의 일입니다. 그것은 오늘날 이 땅에 사는 우리에게는 멀게 느껴지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그것으로 끝이 나지 않았습니다. 복음의 가까움은 그것으로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성령으로 오셔서 이제는 거리와 시대를 초월하여 모든 이들에게 가까이 임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실제적인 복음입니다. 지금 바로 이 자리에서 그분의 살아계신 생생한 실제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 그분의 영광, 그분의 사랑, 그분의 거룩하심, 그 모든 영광스러움을 우리가 맛보고 경험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실제적인 복음인 것입니다. 온전한 구원은 하나님의 3위를 다 경험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고백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만이 아닙니다. 이슬람교의 신자들도 유일신을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다른 종교에서도 그렇게 고백합니다. 그러나 제2위에 이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우리는 예수를 하나님으로 고백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고백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예수가 선지자라고 합니다. 또는 세계 4대 성인이라고 합니다. 이 차이가 그리스도인인가, 아닌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을 신으로 고백하는 이들은 아직 온전한 하나님에 대하여 모르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제로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만 실제적으로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고백하면서 동시에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를 고백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을 그리스도인으로 부릅니다.

이 그리스도인이 실제적인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예수를 고백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는 제3위에 대한 경험이 필요합니다. 예수를 하나님으로 인정하면서 동시에 영으로 이 땅에 오신, 그리고 지금도 실제적으로 아주 가까이서 운행하시는 분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모시고 경험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실제적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며 실제적으로 죄에서 승리하며 세상을 이기는 그리스도인이 되는가에 관련된 문제입니다. 만약 이 땅에 직접 오신 하나님이신 성령님을 피상적으로만 이해한다면 그는 실제적인 해방과 자유한 삶을 누리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 자처하는 이 중에 성령님을 인정하지 않는 이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그에게 가까이 임하시며 인도하시고 주장하시는 그분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느냐 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입니다. 마음으로는 주님을 추구한다고 하면서 실제로 그에게 임하시는 주의 영을 거스르고 방해하는 경우는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주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의 모든 영광이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분이 그의 모든 영광을 가리지 않고 나타나신다면 그 앞에서 살아있을 육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자신의 영광을 가리우고 임하십니다. 복음이란 결국 하나님의 가까우심입니다.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그것은 이론이 아닙니다. 복음은 하나님이 나타나신 것이며 우리에게 임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충만함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맛볼 수 있습니다. 그의 임재는 결코 멀리 있니 않으며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어떤 사람의 집에 강도가 쳐들어 왔습니다. 그는 바로 눈앞에서 칼을 들고 위협합니다. 그것은 아주 위급한 상황입니다. 경찰서가 주변에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 전화로 신고를 하고 그들이 도와주러 온다는 말입니까? 위험은 바로 앞에 있는데 도움은 아주 먼 곳에 있습니다. 그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왜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입으로는 믿으면서도 여전히 죄 가운데 눌리며 패배하는 삶을 사는 것일까요? 그것은 그가 가까이 계신 주님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바로 옆에서 악한 영들이 그를 누르고 있는데 그가 아는 주님은 저 멀리 계십니다. 그러니 그는 악한 세력들에게 얻어터지고 있으면서 하소연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과 해방은 그에게 너무나 먼 이름인 것입니다. 주님은 먼 곳에서 우리를 지켜보시며 사랑하시는 것으로 만족하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바로 곁에 계시면서 교제하고 사랑해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는 우리에게 실제적인 자유와 치유와 행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는 이 땅에 육체로 거하셨으며 지금은 영으로 바로 곁에 임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사람들은 주님의 가까우신 임재와 실제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주님의 아주 멀리 계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아주 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예배를 드릴 때 외에는 주님께 기도하거나 대화를 하거나 의식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멀리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믿지만 지금 내 곁에 계신 하나님은 믿지 않습니다.

어떤 남편이 해외에 오랫동안 출장을 갔습니다. 아내는 남편을 몹시 사랑했기 때문에 아주 슬퍼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은 갑자기 귀국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리던 집에 도착하여 집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여보, 문 열어요. 당신의 남편이요. 내가 돌아왔소.” 아내는 놀랬습니다. 아내는 마침 남편이 너무나 그리워서 남편의 편지를 읽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대답했습니다.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예요? 나의 남편은 외국에 있어요. 그리고 나는 지금 남편의 말씀을 읽고 있어요. 당신은 도대체 누구죠?” 남편은 난감해하면서 대답합니다. “여보, 나요. 나의 목소리도 모른다는 말이요? 나는 지금 방금 돌아왔소. 어서 문을 열어요.” 그러나 아내는 거절합니다. “그럴 리가 없어요. 남편은 이 편지를 통해서만 나에게 말해요. 당신은 나쁜 사람인데 나를 속이러 왔군요. 어서 물러가세요.” 아내는 남편을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사랑한 남편은 관념 속의 남편이었고 그랬기 때문에 실제의 남편이 왔을 때 그녀는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고 있는 일입니다.

어떤 왕이 있었습니다. 그 나라는 아주 아름다운 나라였습니다. 경치도 아름답고 그 곳에서 사는 사람들도 참 아름다워서 모든 나라의 사람들이 그 나라에 이민을 와서 살기를 원했습니다. 지금은 그 나라에 살지 않아도 언젠가는 그 나라에 가야지.. 하고 모든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나라였습니다. 어느 날 그 나라의 왕은 다른 나라로 여행을 가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나라와 왕인 자신에 대하여 아주 사랑하고 좋아한다는 작은 나라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 왕이 그 나라에 가서 백성들을 보니 정말 이 왕의 나라를 좋아하는 것 같았습니다. 사람들이 만나기만 하면 왕의 나라를 노래했고 왕에 대하여 찬송을 불렀습니다. 왕은 아주 마음이 즐거워서 그들과 가까이 교제를 하려고 한 마을의 회관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환영을 기대했지만 실망했습니다. 마을의 회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를 보고 쫓아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상하게도 모두 왕을 보고 욕을 하며 그를 거리에 거칠게 내어 쫓았습니다. 왕은 너무나 이상했습니다. 방금 전까지 자신을 찬양하다가 직접 보게 되자 이렇게 욕을 하고 쫓아내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왕이 아무리 버티어 봤자 소용이 없었습니다. 왕이 바깥을 쫓겨나자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찬양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흘러서 왕은 그 백성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마을 회관에서 왕을 주동적으로 때리고 쫓아냈던 사람이 이민을 신청했습니다. 그리고 왕은 그것을 심사하기 위하여 그를 만났습니다. 그는 왕에게 말했습니다. “왕이여.. 제가 왕을 얼마나 그리워하고 오랫동안 사모했는지 아마 모르실 것입니다. 저는 이 날만을 기다려왔습니다.” 그러나 왕은 그에게 대답했습니다. “이 사람아. 나는 자네에게 가까이 가려고 했지만 자네는 나를 때리고 내쫓지 않았는가. 그러면서 어떻게 나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러한 상황이 온다면 이것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일 것입니다. 개념속의 주님에 대하여는 수없이 찬양하지만 우리의 삶에 실제로 가까이 오시는 그분에 대하여는 그러한 대접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엄청난 고백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복음은 놀라운 약속으로 가득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어떨까요? 과연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풍성합니까? 예배에는 감격이 있으며 삶에는 자유함이 있으며 죄에서는 해방이 있으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임재를 충만하게 누립니까? 우리는 그러한 모습을 별로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도처에서 지치고 피곤한 패잔병들을 우리는 너무나 많이 발견합니다. 우리는 놀라운 개념들을 많이 가지고 있지만 실제적인 행복과 변화와 승리와 자유함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잘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 그분의 가까우심이 바로 복음인데 우리는 아직 너무나 하나님을 멀리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의 힘으로 몸부림을 칩니다. 승리의 한 가지 비결은 오직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그분의 가까우심입니다. 우주의 어느 저편에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그분의 바로 곁에서 우리와 같이 하시며 그 풍성한 사랑과 은총의 모든 것을 부어주신다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 변화와 승리와 자유함과 능력을 주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며 아주 가까운 데 계십니다. 그분은 그를 구하는 자에게 임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그 복음을 경험할 때 우리 모두는 새로워지게 될 것입니다.

출처: 정원목사 著 「지금 이 공간에 임하시는 주님」中에서

 "

전체댓글 0

댓글 쓰기0/200
입력
  이전글 : 2010년 주님의교회 달력
  다음글 : 드디어!!
이전글 다음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