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죽자! | 조회수 : 1381 |
작성자 : 피스 | 작성일 : 2010-01-15 |
또 가라사대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홀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가 7;20-23)
나의 모습을 비추어 놓은 정확한 말씀 때문에 더 이상 다른
말씀에 집중할 수가 없습니다.
금식기도원을 가보면 사람에게서 나오는 불쾌한 냄새가 있습니다. 금식을 하니까 악취가 나온다고 생각 하였습니다.
그런데 금식으로 인하여서도 악취가 나오지만 사람 그 자체가
똥덩어리를 차고 있음으로 인하여 악취가 나오는 것입니다.
음란 ,도적질, 살인, 간음, 탐욕, 악독,속임, 음탕, 교만한 더러운 것들을 온 몸둥이안에 가득 싣고 다니면서도 겉으로 포장된
모습 때문에 내 안으로 흘러 들어온 악한 생각들로 인하여 내가 죽은 삶을 살고 있다는 인식조차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내 남편이 존재하고 있음에도 눈을 흘리는 음란한 인간의 더러운 속성, 주님의 것을 함부로 사용하면서 경건한냥 포장한 모습으로 도적질에 대한 인식조차 없습니다.
남을 미워하는 마음의 충만함으로 사람을 죽이는 살인을 쉽게 하면서 자기 변명을 합니다.
내 욕심으로 가득채우며 탐욕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고 있음에도 그것을 인식하지 아니한채
착각하고 주의 일인냥 달려가고 있습니다.
내가! 내가!! 내가!!! 중심이 되어서 일을 하였습니다.
어이 성령님께서 내 안에 들어오셔서 좌정하실수가 있겠습니까?
홀기는 눈과 남이 잘되는 일을 만날까 훼방하며 흩트러지게 하는 더러운 마음을 품고 있는데 어이 그 자리에 성령님께서 안주 하실 수 있었겠습니까?
내가 기도 한다 한들, 내가 찬양한다 한들, 내가 금식한다 한들 ,내 안의 모셔놓은 더러운 것들로 인하여 성령의 온전한 활동을 이루어 냈겠습니까?
주님은 오늘도 나를 향하여
"회개하라! (마태 3; 2)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리라.
( 마태 3;12)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감이 있으리라. (마태 13; 41-42)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눈으로 영생에 들어 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불에 던지우는 것 보다 나으니라. (마태 18;9-10) "
하시며 훈계의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예 그래도 주님은 내가 자녀라고 말씀을 통하여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물과 기름이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세상의 영과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지만 결국 나는 하나님의 영안에서 다스림을 받아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내가 말씀안에서 죽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죽지 않으려고 포장하고 경건한냥 바둥거리고 있습니다.
세상이 주는 달콤함에 만족하려고 뛰쳐 나갑니다.
세상에서 높아지고픈 속성은 나를 간사한 모습으로 포장합니다.
순간의 만족을 얻으려 동분서주 합니다.
내 안의 영은 서서히 분열되고 조금씩 죽어 가고 있습니다.
사단의 간교함은 점점 더 마음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내안의 영은 아주 조금씩 서서히 사단의 지시함속에서 살아갑니다.
파괴되어 가고 있는 영은 더 이상 방향을 잃어가며 감각 조차
없습니다.
결국 세상기준으로 전략되어진 피폐한 영은 슬픔과 고독과
좌절감에 삶을 원망합니다.
네가 만일 그리스도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덕덩이가 되게 하라. (마태 4;3) 며 예수님을 시험합니다.
그런데 나는 많은 시간을 예수님을 시험하고, 또 시험하며 살고 있습니다.
내가 사단의 압잡이가 되어 살고 있으면서도 더 크게 아닌 척
합니다.
내가 사단보다 나은 것이 아니라 더 지독한 사단의 두목입니다.
또 내가 빌라도보다 더 나은 것이 무엇이 있는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빌라도도 결정하기전에 머뭇거렸습니다.
“그리스도라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마27;22)
하는 질문의 내면에는 인간이 죄를 짓기전에 다가오는 두려움으로 인한 망설임입니다.
나는 주님의 자녀라고 포장하고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한 길로도 나아가지 못하고 망설이고 머뭇거리며 인생을 지내온것 입니까?
아!
주님은 얼마나 오랜시간을 나를 위하여 참으시고 또 참으시며 기다려 주신것일까요?
내가 오래 동안 고요히 하며 잠잠하여 참았으나 이제는 내가
해산하는 여인같이 부르짖으리니 숨이차서 헐떡일 것이라. (이사야 42;14 )
예 주님!
죽겠습니다. 내가 죽겠습니다. 나를 죽여 주시옵소서.
내가! 내가!! 내가!!! 아! “내가”의 삶이 결코 아닙니다.
주님! 주님!! 주님!!! 위하여
세상에 존재하게 하여 주신 그 목적을 위하여 살아가는 인생이어야 합니다.
예 주님!!
이제는 주님의 이름으로 사단아 물러가라 명령하겠습니다.
예 주님!!!
더이상 잠에 취하지 않겠습니다.
쉬지 않고 기도하겠습니다.
악은 어떠한 모양이라도 버리겠습니다.
성령을 소멸치 않겠습니다.
예언을 멸시치 않겠습니다.
영과 혼과 몸이 예수그리스도 강림 하실때에 흠없이 보전 하겠습니다.
( 살전 5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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