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국가의 안보가 염려됩니다 | 조회수 : 1795 |
작성자 : 순천자 | 작성일 : 2010-05-06 |
콜艦피격 잊었다 9·11 테러 당했다
강인선 정치부 차장대우 insun@chosun.com
입력 : 2010.05.04 23:24
2000년 10월 12일 미군 전함 USS 콜(Cole) 호가 예멘 앞바다에서 자살폭탄 공격을 받아 17명이 목숨을 잃었다. 폭탄을 가득 실은 보트가 급유 중이던 USS 콜호에 접근해 폭발했고,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려고 줄을 서 있던 병사들이 죽고 부상당했다.
당시 미 정보기관들은 USS 콜 피격이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끄는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소행이란 걸 짐작하고 있었다. 알카에다는 이미 미국에 대한 테러공격 계획을 하나씩 진행 중이었고, 그해 1월엔 또 다른 미국 전함을 공격하려다가 실패한 일도 있었다.
사고 직후 클린턴 대통령은 "누가 이런 일을 했는지 찾아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은 했다. 그러나 미국은 응징도, 보복도 하지 않았다.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결정한 건 아니었다. 사건 발생 두달 후 중앙정보국(CIA)은 "알카에다가 이 공격을 지원한 것으로 보이는데 확실한 결론은 아니다"는 식으로 애매한 입장을 취해 정부를 주춤하게 만들었다.
같은 시기 알카에다는 세력을 강화했다. USS 콜 공격을 "성공"이라고 홍보하면서, 빈 라덴은 더 많은 동조자와 자금을 끌어들였다.
미국이 "무대응"으로 간 또 다른 이유는 그해 11월 7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의 재개표 논란이었다. 승자가 결정되지 않은 채 한 달여가 흘러갔다. 정치 대소동이 벌어지는 동안 사람들은 USS 콜 피격사건을 잊어버렸다.
그러고서 2001년 9·11 테러가 일어나 뉴욕과 워싱턴에서 약 3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때서야 미국은 USS 콜을 다시 기억해냈다. 미 의회는 9·11 테러 진상조사위를 구성해 2004년 최종보고서를 내놨다. 보고서의 주요 내용 중 하나가 미국 정부가 USS 콜 피격사건을 얼마나 허술하게 다뤘는가였다.
전함이 피격당하고도 정부가 손 놓고 있게 된 데는 다 그럴듯한 이유가 있었다. 클린턴은 정보기관들이 군사 공격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확실하게 빈 라덴의 소행이라는 결론을 내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국방부와 국무부도 비슷한 이유를 댔다. 정보기관은 임기 말의 대통령에게 부담을 줄 수도 있을 것 같아 응징 방안에 대한 보고서는 아예 내지 않았다고 했다.
미국은 결국 알카에다 활동지역인 아프가니스탄 등에 외교적 협력을 요구하고, 유엔 안보리 제재안을 추진하는 등 뭔가 하는 시늉만 했다. 새로 취임한 부시 대통령은 사건 한 번 날 때마다 군사 대응하는 식으로 처리하고 싶진 않다면서, 근본적으로 테러조직을 없애겠다고 했다. "당장 아무 대응도 하지 않는다"는 건 마찬가지였다. 군이 내놓은 각종 군사적 대응 방안엔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당시 미국 정부가 원했던 정보는 "빈 라덴이 USS 콜 테러를 직접 지시했다"는 걸 증명할 수 있는 "확실한 증거"였다. 테러조직의 명령전달 문서나, 빈 라덴이 명령하는 걸 옆에서 본 사람의 증언 수준의 증거를 필요로 했던 것이다. 대통령과 정보기관이 확실한 증거 부족을 이유로 움직이지 않는 사이 희생된 병사들은 잊혔고, 미국은 불과 1년도 안 돼 9·11 테러라는 대참사를 "무대응"의 대가로 치렀다. 보복이나 응징이 과거에 일어난 일에 대한 한풀이보다 미래의 안보를 위해 더 중요하다는 점을 간과했던 것이다.
도발의 책임을 묻지 않으면 도발은 계속되고 더 커진다. 우리가 북한을 상대하면서 얻는 교훈도 같은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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