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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바리세인같은 저에게도 은혜를 허락하셨습니다. 조회수 : 1939
  작성자 : 행복꽃 작성일 : 2009-01-03

할렐루야!

2009년 1월 2일은 제 인생에서 꼭 기억되어야 할 날입니다.
주님께서 제게 방언과 성령춤을 허락하신 날이니까요.

저는 35세. 모태신앙. 아니, 못된신앙으로 바리세인같은 삶을 살던 사람입니다.
의심많고, 머리로 모든 것을 판단하며 살려했던 사람입니다.
한국에서 최고라고 하는 대학에서 석사까지 공부하고 수년간 외국을 드나들면서 자만하고 교만하게 살았고,
밤을 새워서 일을 하던 사람입니다.

그러면서도 못된 신앙의 버릇은 있어서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는 길일거야 라고 스스로를 세뇌시키며 살던 사람입니다.

성경을 읽으면서도 다른 종교서적이나 교양서적을 읽듯이 머리로 판단하고 깨달으려고 했던 사람입니다.

10년도 넘게 제대로 기도해 보지 못했던 위인입니다. 저는.
방언은 내게 큰 의미가 없다고. 성령의 체험이 꼭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나는 입으로 시인하니까 구원을 받을거라고 스스로 위로하던 못된 "말로만"크리스쳔 이었습니다. 저는.

담배에. 술에. 세상의 온갖 타락한 문화의 중간에서 이성으로 싸워보려했던. 그러나 결국은 매번 실패해서 타협하며 살았던 위인입니다. 저는.


그래도. 바리세인처럼.
교회는 계속 다녔습니다.
어줍잖게 외운 성경구절과 동화같이 치부된 이야기들을 아이들에게 들려주며
교사를 자처하던 바라세인이었습니다.
"내가 눈코뜰새 없이 바빠도 이렇게 열심히 하는 사람이야"
"내가 이렇게 많이 배웠어도 당신같은 사람들의 고충을 이해하고 상담하고 있잖아"
"이런 내 열심을 그래도 하나님은 조금 인정해 주시겠지"
"그래도 35년 모태신앙에 장로님 권사님 아들인데 걸맞는 모습은 좀 보여야겠지? 이정도면.."

그렇게 35년동안 살았던 저를.
몸은 비록 조금씩 세상의 명예와 인정을 받아가며 영역을 넓혀가고 있었지만,
갈증을 느끼다 못해 스러져 죽어가던 제 영혼을.

2009년 1월 2일에 주님께서 만지셨습니다.


확실히.

주님께서 저를 사랑하셨던 것 같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장모님과 와이프를 만나게 하셨고,
5년의 결혼기간동안 성령의 능력에 대해 서서히 의심의 눈을 풀게 하셔서

2009년 1월 2일
80일된 둘째딸을 안고 가족과 함께 주님의 교회를 찾게 하셨습니다.
우습게도. 그곳이 내가 아는 성경의 지식과 배치되는 곳은 아닌지, 그래서 혹시 와이프나 장모님이 이단에라도 빠지려는 것은 아닌지, "검증" 하러가겠다고 와이프에게 이야기 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면서도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내 속의 영혼이, 굶주리고 갈증에 아사상태인 영혼이 주님의 은혜를 갈망하는 것을 말이죠.

찾아가는 길에 차안에서 약간의 말다툼으로 먹먹한 가슴으로
의심반. 호기심반.
9시 집회에 앉아있었습니다.

찬양을 하면서

몇몇 분들의 손이 신기하게 움직이는 걸 봤습니다.

"저건 또 뭐야?"

머리도, 몸도 손과 함께 리듬에 맞춰서 독특한 모습의 동작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신기하군. 억지로 하는걸까? 외워서 하는걸까? 뭔가 다른 것이 있는 건 아닐까?"

찬양을 계속 할 수록 여기 저기에서 신기한 동작들이 이어졌습니다.
아무것도 모를 것 같은 아줌마도.
머리가 희게 쉰 아저씨도.
아직 어린애 같은 청소년도.
한창 놀 나이인 대학생으로 보이는 청년들도.

"허..참.. 신기하네."

그러면서도 제 맘은 의심의 빗장으로 잠겨서 열리지 않았습니다.

여러 분의 간증이 있었고,
여전히 "의심"을 깔고 들었습니다.

설교시간이 되어서 목사님께서 강대상에 서셨습니다.
그냥 평범한. 하지만, 눈빛이 분명히 살아있는 분으로 느껴졌습니다.

"검증"을 위해서는 목사의 설교 내용이 가장 핵심이므로 말꼬리 하나 하나 잘 새겨들으며 검증이 아닌 "검증"을 해 나갔습니다.
말씀을 듣는 중에 의심이 조금씩 사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말 그대로 눈 녹듯이 스르르..

주님의 교회를 찾기전에 와이프는 저의 방언과 성령체험을 위해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그래, 기도해 보자. 고등부 수련회 이후 포기해 버린, 35년동안 못했던 방언을 허락하실지도 모르지."

기도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교회생활을 여러 경험이 있다고, 나름대로 소리쳐 기도해 보았습니다.
목이 쉬는 것이 느껴져도.. 소리쳐 보았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불이 다시 켜졌지만.
여전히 성령체험은 커녕 방언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뭐.. 그렇지 뭐.. 고등학교때 수련회 부흥회 때도 그랬어. 뭐. 새삼 새로울 건 없잖아."

그래도 치밀어 오르는 건. 아이를 안고 기도하는 와이프나 주변에 계신 다른분들은 방언에, 성령춤이라고 불리우는 여러 동작에 다양한 일들이 일어나는데, 나 혼자만 고립되어서 외톨이가 되어있다는..
망망한 바다에 혼자 떠 있는 것 같은 느낌.
왜 나에게는 저런 경험이 없는지 슬슬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때마침 목사님께서 아직 방언을 받지 못한 사람들 나오라고 했습니다.
휘적 휘적 일어나서 강대상으로 나갔습니다.
십여명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목사님은 아주 세밀하고, 자세하게 상황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성으로 제어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맡겨두라고.
성령님께 맡겨두라고.

아마도 제 갈급한 영혼이 더 제촉했는지 모릅니다.
이성을 내려놓고 성령님께 맡기고 싶은 마음이 나를 휘감았습니다.
용기를 얻어 다시 기도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혀가 스스로 움직이고,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되어 통곡하는 듯한 기도가 터져나왔습니다.


"내 영혼아. 갈급한 내 영혼아. 하나님을 찬양하라. 내 영혼아. 내 영혼아."
나의 머리는 외치고
나의 영혼은 기도하고
나의 두손은 하늘을 향해 저절로 올라가고

그렇게 꽤 오랜시간동안 그 자리에서 터져나오는 방언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목사님께서 다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손을 내밀라고 하셨습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마치 무엇인가를 건네듯 내민 제 손 위 허공에 목사님의 손을 올리셨습니다. 
다시 방언으로 기도하는데,
"성령님이 인도하시는대로 하세요. 손을 억지로 막지말고, 힘을 빼고 움직이는 대로 두세요" 라고 말씀하시는 목사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할렐루야!

신기하게도, 제 의지와 상관없이 손이 서서히 옆으로 퍼지면서 팔이 위로 들려올려지더니 천천히 내 두 팔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걸 느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했습니다. 감사의 기도와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제 영혼은 방언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는 걸 느꼈습니다.
그리고 제 두 팔은. 35년 평생 제 의지로 휘둘렀던 두 팔은 성령님의 의지대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었습니다.

"다윗처럼 찬양하는게 이런거군요 주님.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서 찬양한게 이런거였군요 주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 아.

정말 감격의 순간이었습니다.

제게도 은혜를 허락하신 감격의 순간이었습니다.

더 신기한 것은 찬양과 기도가 마무리 되려고 하면 성령님께서 제 팔을 다시 다소곳이 모아서 제 자리에 돌려주시는 겁니다.

"그렇구나. 이게 신령한 체험이고 이것이 성령님의 역사하심이구나."

수줍은 사춘기 소년처럼 자리에 돌아온 제게 가족들은 축하의 인사를 해 주었습니다.
이제 비로소 같은 곳을 보게 되었다구요.

9시부터 시작한 집회의 시계바늘은 벌써 새벽 3시를 넘어서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기도시간에는 더욱 강한 성령님의 인도를 받았습니다.
방언기도와 함께 찬양소리에 맞춰 온 몸이 춤을 추는 겁니다.
그러는 중에도 어찌나 신기한지.
내 손이 어떻게 그러한 동작들을 하는지, 내 허리가 어떻게 이렇게 움직이고 있는지,
각 찬양이 끝나는 소절과 다시 시작하는 소절에 찬양을 대기하는 내 몸의 동작들이 얼마나 재미있던지.

장모님께 아기를 맡긴 와이프는 옆에서 영어로 찬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몇 년간의 유럽 생활에서도 첫째를 낳고 키우느라 시간이 없다고 영어를 못해서 제게 핀잔을 듣던 사람이었는데,
이 사람이 유창한 영어로 반주기에서 나오는 찬양을 맞춰서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워십댄스를 추듯이 온 몸을 흔들어 찬양하고 있었습니다.
환호성까지 외치면서 말이죠. 와이프는 다른 방언을 구했고, 주님이 다른 방언을 주시면서 성령의 춤으로 온 몸을 휘감은 것 같습니다.

아.

참 신기하고 오묘합니다.
주님의 세계는 역시 제가 머리로 판단할 성격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세계는 너무 경이롭습니다.


새벽 5시를 넘어서 여전히 기도하고 있는 다른 분들을 뒤로한 채 교회 문을 나섰습니다.


작년. 유럽에서 태어난 첫째 아이의 첫번째 생일 때 였습니다.
생후 일년이 넘었는데, 아직 기기만 하고 걷지 않는 첫째를 보면서 걱정이 있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다 걷는데, 왜 우리 아이는 아직 걷지 않을까?
혹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환경을 바꿔볼까?

몇 일 후, 아이는 아빠를 향해 손을 벌리고 한 걸음 한 걸음을 떼었습니다.
그 걸음에 환호성을 지르던 저 입니다.
한번 걷기 시작한 아이는 얼마 지나니 뛰고 점프하고 원하는 모든 동작을 스스로 하게 되었습니다.


35년 동안 아직 스스로 걷지 못하던 못난 바리세인이었습니다. 저는.
오늘 첫 걸음을 떼었으니 아빠되신 하나님께서, 예수님께서, 성령님께서 얼마나 좋아하실까요?

아직 미숙해서 때론 넘어질 것도 같습니다. 그 때마다 다시 붙들어 일으켜 주시겠죠? 제가 우리 아이에게 하는 것처럼 말이죠. 믿습니다. 암. 믿고 말구요.

하지만, 한번 걷기 시작했으니 조금 지나면 뛰기 시작할 겁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보고 손을 내밀어 걸어갈랍니다.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해서 힘을 얻을랍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쫓아갈랍니다.

걷고, 뛰었을때는 악한 영들을 대적해서 싸울랍니다.
아직도 거짓말같은, 하지만 제가 체험하고 믿는 성령의 불로 승리하려 합니다.

그래서, 결혼서약식때 맹세했던.

"믿음의 명문가문"을 세우려 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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