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자신이 아닌 주님께 집중 하십시오 | 조회수 : 1633 |
작성자 : 순천자 | 작성일 : 2010-10-02 |
자신이 아닌 주님께 집중 하십시오
흙으로 만들어진 육체는 마귀의 먹이입니다. 마귀들은 육체의 정욕과 육체 중심의 의식을 통해서 사람을 지배하고 속이고 누릅니다.
육체와 물질 자체가 악한 것은 아니지만 육체는 영혼을 표현하는 지체이며 그가 주인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육체가 영혼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움직이고 오히려 영혼을 지배하려고 할 때 마귀는 그것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육체가 영혼으로부터 독립하고 주인이 되어서 영혼이 육체의 정욕의 종노릇을 하게 된다면 이미 타락된 것이며 영적 질서가 무너진 것입니다.
육체와 함께 마귀의 먹이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 바로 자아이며 이기심입니다. 바로 ‘나’인 것입니다. ‘나’에 집중하고 ‘자기’에 몰두하는 이들은 마귀로부터 자유롭게 풀려날 수 없습니다. 주님을 의식할 때 천국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나를 의식할 때 지옥이 시작됩니다. 천국의 근원은 주님이시며 지옥의 근원은 나입니다. 나를 의식하고 나를 바라보며 나에 대하여 집중하고 있는 이들은 참된 천국의 실상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사람은 주님 보다 자신의 욕망에 더 관심이 있습니다. 주님께 기도한다고 해도 주님 자신을 알고 교제하며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며 순종하는 것보다 주님을 통하여 자신의 소원과 욕망을 이루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러한 이들은 오래 신앙생활을 해도 욕심과 번뇌와 지옥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그들은 참 신앙의 기쁨이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나 자신에 집중하는 이들은 주님보다 자신의 감정이나 입장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입니다.
이들은 주님이 자신을 사랑해줄 때만 주님을 좋아합니다. 만일 주님이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더 사랑하신다고 느끼면 그들은 주님께 대하여 분노할 것입니다. 그들은 삶의 주인이 주님이 아니고 자신이기 때문에 자신을 소흘히 대하는 자는 인간이든 주님이든 다 대적하고 미워하게 됩니다.
천국은 주님을 모든 것의 주인으로 모시는 이들이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모든 것의 중심에 자신이 있기 때문에 그 천국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오래 기도하고 오래 신앙생활을 해도 이들은 천국의 기쁨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주님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만을 의식하는 이들은 기도를 한 후에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의 기도가 영적으로 멋지게 들렸을지에 대하여 관심을 기울입니다. 자기의 기도를 주님께서 기뻐하셨을까 하는 데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자신의 입장과 명예이며 주님의 마음은 그들의 관심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 많은 갈등과 싸움들이 있습니다. 많은 서운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갈등과 서운함 중에 주님을 위한 것은 별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자기를 인정해주지 않고 자기에게 관심과 사랑을 베풀지 않는 대상에 대해서, 자기를 오해하는 이들에 대해서 그들은 분노하고 서운해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중심인 것이며 주님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주님과 천국에 소한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많은 이들이 신앙에 열심을 냅니다. 적지 않은 경우 그것은 사람에게 칭찬과 인정을 받기 위한 것입니다. 이들이 그들의 열심을 통해서 그가 바라는 칭찬과 인정을 받지 못할 때 그러한 열정이 분노와 상처와 울분으로 바뀌는 것은 오늘날 어디서나 쉽게 흔히 볼 수 있는 일입니다.
이와 같이 나, 나의 지위, 나의 입장, 나의 체면, 나의 감정, 나, 나, 나, 오직 나에게 집중할 때 사람은 자유를 얻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마귀에게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마귀는 ‘나’를, ‘나의 입장과 체면’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오직 만유의 주되신 주님을 두려워합니다.
어떤 이들은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볼까 하는 의식에 지나치게 사로잡혀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상대방이 어떻게 나를 볼까 하는 의식에 지나치게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묶임입니다. 자기에게 지나치게 민감한 사람은 자유를 얻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노예입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을 너무 자랑스러워합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을 너무 비하하고 좌절합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을 너무나 불쌍한 비련의 주인공처럼 생각합니다. 그 모든 것들이 다 너무 자신에게 집중해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하다고 해도 그것은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악하다고 해도 그것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자기의 죄에 집착하여 아주 심하게 울고 고통하며 좌절하고 비통해합니다.
죄에 대하서 아파하는 것은 좋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의 죄에 집중하는 것보다는 주님의 사랑과 은혜에 집중하는 것이 좋습니다. 자기의 약점이나 죄에 지나치게 집중하는 것도 일종의 자기 의가 될 수 있으며 주님을 바라보지 않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 프란시스코와 한 제자가 산길을 걷고 있는데 숲 속에서 샘물이 맑게 소리 내면서 흐르는 것을 보고 제자가 말했습니다.
“스승님, 제가 저 샘물처럼 순결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자 프란시스코가 대답했습니다.
“자신의 순결함이나 더러움에 너무 집착하지 마십시오. 형제의 의식을 높여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주님만이 온전하게 순결하십니다. 형제는 그것으로 기뻐해야 합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주님이 순결하시며 그분이 우리의 주님이시라는 것, 그것을 바라보는 것으로 충분한 것입니다.”
지나치게 자신을 의식하는 것은 자유가 아닙니다. 그것은 묶임입니다.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나를 초월할 수 없다면 우리는 진정한 자유와 안식을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자신에게 집중할 때 우리는 오직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만을 좋아하게 될 것입니다. 그 사람이 주님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그와 상관없이 우리에게 잘해주는 사람을 좋아하게 될 것입니다. 자신을 초월하지 못할 때 그러한 감정에 묶이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주님께 대한 사랑을 간절하게 고백하고 많은 시간동안 기도하던 처녀들이 이상하게도 쉽게 불신자들과 사랑에 빠지는 것을 보고 많이 놀랐습니다.
어느 날 나는 그러한 자매에게 상대방은 믿지 않는 사람인데 왜 사랑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자매는 대답했습니다. 자기를 진정으로 사랑해준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러한 자매들은 주님을 중심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중심으로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주님이 사랑을 받는 것보다 자기가 사랑 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녀가 볼 때는 자기에게 잘 해주는 사람은 다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은 당연한 것 같고 본능적인 것이지만 진리적인 애정은 아닙니다. 그러한 이들은 아직도 자기 자신에게 묶여 있는 것입니다.
천국의 관점은 모든 것이 주님의 관점입니다. 이것을 주님이 기뻐하시는가, 주님의 의에 맞는가 하는 것입니다. 천국의 주인은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고 나를 무시하는 사람은 악한 사람이라고 느낀다면 그 사람의 영혼은 아직 천국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영혼은 아직 어두운 곳에 있습니다. 그 곳에는 아직 천국의 빛이 비칠 수 없습니다. 주님 중심은 천국이며 자기중심은 곧 지옥이기 때문입니다.
애인이 다른 사람을 쳐다볼 때 사람들은 분노합니다. 배우자의 마음이 다른 데에 있을 때 사람들은 절망하고 분노합니다.
하지만 주님의 고독에 대해서 아파하고 느끼는 이들은 찾기 어렵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아직 주님의 마음과 멀기 때문이며 그들의 감정은 자기 자신에게 꽉 차 있기 때문입니다.
나 때문에 절망하고 화를 내는 사람은 많지만 주님 때문에 낙담하고 분노하는 사람은 찾기 어렵습니다. 그것은 아직 많은 사람들이 영적인 어두움 속에서 헤매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많은 권리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당연하게 사랑 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이들은 우리는 사랑 받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이며 그것은 우리의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행복하게 살아야 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실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당당하게 하나님께 그들의 권리를 요구합니다. 그러다가 그의 요구를 하나님이 들어주시지 않는다고 느끼면 그는 화를 냅니다.
그의 가치관에 있어서 주인은 누구입니까? 바로 자신입니다.
그에게 있어 하나님은 그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가치관은 그의 영혼이 아직 어두운 곳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는 아직 천국과 멀고 먼 곳에 있습니다.
우리는 권리가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창조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창조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권리가 없습니다. 우리는 아무 것도 요구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주신다면 그것은 주님의 은총이며 사랑입니다. 그러나 안 주신다면 그것은 그만입니다.
그것이 자유입니다. 그것이 순종입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 엎드려 있는 작은 종에 지나지 않습니다.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며 원망하고 불평하고.. 그것은 아직 자신을 벗어나지 못한 것입니다. 어두움을 벗어나지 못한 것입니다. 거기에는 마귀의 역사가 있습니다. 자기중심의 사람들은 마귀에게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모세는 미리암에게 비난을 받을 때 자기변호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주님께 속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위해서는 방어하기를 원했지만 자기 개인을 위해서는 방어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직접 미리암을 치셨습니다.
이것은 자기에게 속하지 않고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자기의 위신과 자존심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주님보다 그것을 더 우선시 합니다.
자기의 감정을 건드리면 참지 않습니다. 겉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속으로 오래 동안 분노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그것은 아직도 자신에게서 나에게서 해방되지 못한 것을 보여줍니다. 아무리 많은 능력과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아직 자신을 벗지 못했다면 그것은 아직 온전한 승리가 아닙니다.
육체가 있는 곳에 마귀는 따라다니면서 시험을 합니다. 육체는 마귀의 먹이입니다.
또한 나의 자아는 마귀의 먹이이며 공격의 재료입니다. 마귀는 사람들이 주님께 집중하지 않고 오직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을 기뻐합니다. 그렇게 할 때 마귀는 사람에게 모든 무기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에 집중할 때 마귀는 억울한 마음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분노를 일으키고 시기를 일으키며 서운함을 일으키고 헛된 욕망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러난 어떤 사람이 오직 주를 바라보며 주만을 구한다면, 자기를 초월하여 자기가 죽든지 살든지 칭찬을 듣든지 욕을 먹든지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마귀는 그를 해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는 육과 자아에 대해서 죽었고 오직 주님에 대해서 살았기 때문에 죽은 사람에게 마귀는 역사할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진정한 승리는 자신을 버리는 것입니다. 나를 추월하는 것입니다. 오직 모든 일에 주를 바라보며 주를 구하고 주님의 마음을 느끼고 주님의 입장을 구하며 주님을 알고 주님만을 드러내기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동기의 순수함이 있을 때 마귀는 가까이 오지 못합니다.
교만도 교활함도 거짓도 위선도 오직 나에 대해서 집착하고 집중하고 있을 때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버리고 오직 주만 바라볼 때 우리는 진정한 승리를 누리게 됩니다.
지옥의 시작은 바로 나입니다.
천국의 시작은 바로 주님입니다.
지옥의 중심은 바로 나입니다.
천국의 중심은 바로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어디서나
오직 주님만을 바라고 구해야 합니다.
주님의 의가 나의 의이며 주님의 은총이 우리의 재산입니다.
사람들이 우리에게 선하다고 할 때 우리는 대답합니다.
“우리는 선하지 않습니다. 오직 주님이 선하십니다.”
사람들이 우리에게 옳다고 할 때 우리는 대답합니다.
“우리는 옳지 않습니다. 오직 주님이 옳습니다.”
사람들이 우리에게 능력이 있다고 말할 때 우리는 대답합니다.
“우리는 힘이 없습니다. 모든 능력은 오직 주님께로부터 옵니다.”
주님이 모든 것입니다.
주님이 모든 선과 아름다움과 능력과 지혜와 부의 근원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잊지 않고 항상 주만을 바라볼 때
우리는 마귀의 모든 공격을 능히 물리칠 수 있을 것입니다.
할렐루야.
정원목사
출처: 대적기도의 근본적인 승리비결
전체댓글 0
이전글 : 오늘 주님의 사랑의 편지:버리고 비우고 포기하라는 나의 음성을 듣고 있느냐? | |
다음글 : 오늘 주님의 사랑의 편지 : 보이지 않는 영원한 나라를 사모하라. | |
이전글 다음글 | 목록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