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포도원을 다스리는 가난한 자” (1) (렘 52:12-16) | 조회수 : 2011 |
작성자 : Joshua | 작성일 : 2010-12-11 |
“ 포도원을 다스리는 가난한 자 ” (렘 52:12-16)
12.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왕 십 구 년 오월 십일에 바벨론 왕의
전 시위대 장관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13. 여호와의 전과 왕궁을 불사르고 예루살렘의 모든 집을 귀인들의 집까지 불살랐으며
14. 시위대 장관을 좇는 갈대아인의 온 군대가 예루살렘의 사면 성벽을 헐었으며
15. 시위대 장관 느부사라단이 백성 중 빈한한 자와 성중에 남아있는 백성과
바벨론 왕에게 항복한 자와 무리의 남은 자를 사로잡아 옮겨가고
16. 빈천한 국민을 남겨두어 포도원을 다스리는 자와 농부가 되게 하더라.
본문의 내용은 빈한한 자나 성 중에 남아 있는 백성과, 바벨론 왕에게 항복한 백성은 바벨론으로 끌어가고 빈천한 국민은 남겨 두어 포도원을 다스리는 자와 또 구별 되이 그 포도원에서 농사를 하는 농부가 되게 하기 위해 바벨론의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의 모든 것을 헐어 버리게 됩니다.
물론 이 말씀에도 사람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신앙의 역사가 숨겨져 있습니다.
찾아보자면 먼저 문장의 원문을 뜻풀이를 해야 합니다.
바벨론은 ‘발랄’인 ‘흩다’라는 뜻에서 유래된 것이며, 그 흩음에 있어 바벨론이 ‘바브일’인 “신의문”이라는 뜻으로 유일신 하나님이 계시는 천국에 들어가는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흩는다는
뜻도 있고 ‘신들의 문’인 ‘바빌리’에서 유래되어 마귀의 문으로 들어가게 하기 위해 하나님을 바라 볼 수 없게 생각을 ‘흩어 버린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분명한 것은 이사야 47장 전체에 서술되어 있는 말씀으로 바벨론이라 함은 인간의
오욕을 그 바탕으로 하고 있어 성경에 등장하는 바벨론은 항상 그 욕심을 가진 타인의 괴롭힘에서 시작되는 일이거나 그런 바벨론 적인 자신을 발견하고 하나님 찾는 일을 시작하는 두 가지 중
하나가 반드시 설명되고 있습니다.
살펴보면 본문의 의도는 분명 자신의 신앙이 하나님의 뜻을 찾아 마음에서 예수님으로 상징되는 포도나무에 접 붙은 가지가 되기 위한 바벨론이 등장하여 이는 앞에 설명 된 후자의 설명으로
이해 해야 합니다.
그 왕은 ‘절대’라는 의미이며 느부갓네살이나 느부사라단은 ‘예언’이란 뜻에서 시작을 합니다.
느부갓네살의 재위 기간에서 ‘하나의 신앙 훈련 기간’을 말하는 ‘년’의 ‘십’은 ‘십일조, 축적, 쌓다, 진실’이란 뜻이며, ‘구’는 ‘향하다’라는 뜻으로 하나님과의 온전한 화평을 목적으로 하는 십일조를
드리는 날을 사모하여 달려가는 기간을 설명하는 것입니다.(물질의 십일조라는 의미가 아님)
‘새 것이 되다, 새롭게 하다, 다시 세우다, 다시 건축하다, 수선하다’라는 뜻을 기본 어근으로 하는 ‘월’의 다섯 번째인 ‘오’는 ‘소금, 맛들이다, 동정하다, 불쌍히 여기다’라는 뜻이 어근입니다.
그러한 때에, 바벨론의 시위대 장관 느부사라단이 등장하는 바, 그 때 ‘하나님이 세우신 기초로
내려 간다’는 뜻이며, 사람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자세라는 ‘예루살렘’에 느부사라단이 군대를
이끌고 쳐 들어와 예루살렘에 이르렀습니다.
‘시위대’는 ‘타바흐’로 번제의 제물을 만들기 위한 ‘요리사, 학살자’라는 뜻이며, ‘장관’은
‘풍성하다’는 뜻으로 시위대 장관이란 남을 죽여 스스로 제물이 되게 하는 것이 가득한 사람이란
뜻이 됩니다.
‘이르렀다’는 ‘보’로 ‘오다, 가다’라는 뜻 이외에도 ‘얻다, 주다, 인도하다, 들어 올리다, 먹다, 승인하다, 확실히 수용하다, 길’ 등의 뜻이 있어 현상적인 의미를 떠나 영을 살리는 마음으로써
세상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찾는다면 문장 전체가 재미있는 또 다른 문장이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그 느부사라단이 부수고 불태운 여호와의 전에서 ‘전’ 은 ‘바이트’로 ‘짓다’라는 뜻의
‘바나’에서 유래되어 ‘집’이기는 하지만 ‘감옥, 지하 감옥, 딸, 가족, ~~에서부터, 될 수 있는 대로
크게’ 등 많은 뜻과 함께 ‘본국에서 태어난, 휘장’의 뜻이 함께 있어 사람의 마음에 있는 집이기도
하지만 그 집에 하나님을 가두어 두었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습니다.
또 왕은 ‘멜레크’로 ‘보좌에 오르다, 다스리다, 확실히, 통치하다’라는 뜻이며, ‘궁’ 역시 하나님의 ‘전’과 같은 뜻인데, 자신이 아닌 하나님의 전과는 전혀 다르게 자신이 보좌에 올라 왕이 되어 통치
하는 곳이기 때문에 그 궁은 남을 가두어 두는 집이라고 해석 되어야 합니다. (살후 2:4)
"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 (살후 2:4)
이는 예레미야의 예언을 통해 망해야 할 이스라엘에 대한 예언에 존재하는, 하나님이 집이며
예루살렘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고 자기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한 신앙인의 마음에
있는 예배관에 대한 책망과 일치하는 해석입니다.
또 ‘귀인’은 ‘가돌’로 ‘꼬다, 크게 만들다, 육체, 소유, 명예, 자존심, 자랑하다, 거만하게 말하다,
커지다, 우수하게, 초과하다’ 등의 듯인 가달에서 유래되어, ‘더 큰, 더 늙은, 더 건방진, 높은,
힘 센, 더욱 많은, 고상한 매우,거만한 것, 심히 아픈’ 등의 뜻을 가지고 있어 그 뜻만으로도
얼마나 하나님을 대적하면서 자기 자랑에 교만 거만 오만 방자함이 더한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도 ‘집’ 이란 ‘보’이지만 이 보는 자기 자신이 거기에 스스로의 감옥에 살고 있는 상태를 설명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그 집을 불 태운다에서 ‘불’은 ‘싸라프’로 ‘불 태우다’라는 뜻도 있지만, 그 싸라프는 하나님의 명을
받아 일하는 천사이기도 하며 모세의 때에 등장한 구리뱀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불을 태웠다는 것은 사람이 임의로 태워진 것이 아니라 그 느부사라단은 하나님이
보낸 하나님의 일군이었다는 근거가 됩니다.
14절을 보면 그 예언이라는 뜻의 느부사라단을 좇는 ‘약탈자’라는 뜻의 ‘갈대아인들로 구성된 군사들이 예루살렘의 사면 벽을 헐어 버렸습니다.
‘사면’이란 ‘싸바브’로 그 뜻 중에 특이한 것이 ‘외면하다, 피하다, 돌아서다’라는 뜻입니다.
‘성벽’은 ‘호마’로 ‘연결하다’라는 뜻이 있지만 그 앞에 있는 기본 어근인 ‘훌’이 ‘근심하다, 걱정하다, 근심과 두려움에 빠지다, 상처 입다, 산통을 겪다’를 바탕으로 ‘희망하다, 주의 깊게 기다리다, 형태를 이루다’라는 듯이 있어, 인본주의 신앙인에게 소외받던 신앙의 형태를 바로 세우고 열매 맺는 신앙인 되기 위해 무너져야 할 성벽과 같은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상징적 의미에서 예루살렘의 성벽은 요한계시록 21장에 등장하는 바, 그 성벽은 다시 세워져야 하는 성벽으로 이사야 60장 18절에 그 성벽은 구원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사 60:18)
“ 다시는 강포한 일이 네 땅에 들리지 않을 것이요 황폐와 파멸이 네 경내에 다시 없을 것이며
네가 네 성벽을 구원이라, 네 성문을 찬송이라 칭할 것이라 ” (사 60:18)
그러므로 인본주의적 자기의 성품을 따라 살던 사람이 신의 성품, 하나님의성품으로 변화 받기
위해 헐어 버려야 할 예배관이 무엇이며, 세워야 할 예배관이 무엇인지의 차이를 확실히 알 수
있게 들려주시는 말씀입니다.
15절에서 ‘빈한하다’는 ‘다라’로 ‘매달리다, 병으로 수척해지다, 가장 가난한 부류’라는 뜻으로
물질적, 보편적 가난한 자를 상징합니다.
이를 성경적인 의미상으로 볼 때 사람 앞에서 자신을 자랑하며 자신의 뜻대로 살고자 타인을
가르치며 거만을 떠는 13절의 ‘귀인’을 뜻하는 것입니다.
즉 사람의 행동을 보며 판단하고 정죄하며 가르치는 것을 그 사람을 우상삼아 자기의 소원을 들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신 로마서 1장의 말씀과 같은 맥락에서 하나님께 하늘의 것을
달라고 구하는 가난한 자가 아니라 사람에게 자기가 추구하는 명예를 달라 하고 자존심을
(세워)달라고 구걸하는 가난한 자란 뜻입니다.
‘백성’은 ‘암’으로 ‘어둡게 하다, 어둡게 되다, 숨기다’란 뜻을 가진 ‘아맘’에서 유래되어 ‘서로
연결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아있다’는 ‘예테르’로 ‘넘쳐흐르다, 돌출되다, 차고 넘치다’라는 뜻인데 예레미야의 특성상
이는 마음의 생각에 있는 것이 차고 넘쳐 사람에게 보이는 행동화 된 것을 상징합니다.
‘성중’은 ‘이르’로 지배하기 위해 잠에서 깨어 눈을 뜨다"라는 뜻입니다.
‘항복한’은 ‘나팔’로 ‘자신을 밖으로 내동댕이치다, 중단하다, 실패하다, 누워있다, 내동댕이치다, 죽다, 죽이다, 강타하다, 압도하다, 멸망하다’라는 많은뜻이지만 하나로 압축하면 모든 일에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실망하며 자포자기 하는 형태를 말합니다.
16절에서 ‘빈천한 국민’이라고 했지만 원문에 <그 땅이> 라는 단어인 ‘하에레츠’가 하나 더 있어, 빈한한 거지이긴 마찬가지이지만 그 땅이 거지인 자 즉 심령이 가난한 거지를 뜻하므로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께 받고 성품의 변화를 받고 싶어 하나님께 진정으로 소원하는 하나님께 바라는 영적 거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포도원이란 당연히 성령의 열매를 수확하기 위한 포도원 즉 하나님 말씀의 밭을 뜻하는 것이며, 농부란 당연히 그 땅을 경작하는 것이며, ‘다스리다’는 ‘테바흐’로 시위대와 같은 뜻이지만 남의 것을 흩기 위한 약탈자가 아닌 약탈을 당하는 사람이 주체이기 때문에 이 살육자란 살육자가 아니라
‘요리사’로 이해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이 먹기 위해 요리를 잘 하는 신앙의 한 형태로
해석해야 합니다.
‘농부는’ ‘아가브’로 ‘밭을 파다, 또는 쟁기질 하다’라는 뜻인데, 쟁기를 잡고 뒤돌아보는 자는
필요 없다고 하신 예수의 말씀을 생각한다면 그 의미가 더욱 새로워 질 것입니다. (눅 9:62)
(지나간 과거에 얽매이지 말라는 의미)
“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 (눅 9:62)
따라서 본문을 마음의 문제로 재해석을 한다면, <하나님의 집(지성소)으로 들어가기 위해 자신을 위한 예언을 따라 하나님과의 온전한 화평을 목적으로하는 때를 사모하며 생활을 할 때에, 타인을 동정하여 자신이 먼저 녹는 소금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즉 자신을 죽여 제물이 되는 예배에 대한 예언이 마음에 있어 지금까지 알고 있던 교회 중심의
예배관과 타인 위에 자기가 최고라고 말하던 교만과 자랑을 일삼던 마음을 불사르게 되고, 자신을 죽여 제사하고픈 마음에 자신에게 존재하는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비난하며 싸우고 싶은 생각으로 인해 교회 중심의 예배에서만 구원이 있다고 믿던 그 벽을 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사람 앞에서 자신을 위대하다, 대단하다 라고 칭찬해 주길 바라던 공명심과, 그 행위들과,
영을 위해 인내하지 못하던 인본주의적인 모든 행동들을 버리게 되어, 마음의 생각에서 자신의
영을 위해 하나님께 긍휼을 구하는 가난한 마음만 남아 심령이 가난하게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마음의 밭을 가는 농부가 되게 하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영적 왕이
되도록 남겨 두었다>라는 말씀이 됩니다.
글쓴이- 흰돌
http://cafe.daum.net/awakehous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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