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 포도원을 다스리는 가난한 자 " (2) | 조회수 : 1709 |
작성자 : Joshua | 작성일 : 2010-12-11 |
물론 이러한 믿음이 되려면 먼저 보편적 행위를 만들어 내는 인본주의적인 사고가 바뀌어야
합니다.
그리고 인본주의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하는 믿음도 버려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품의 변화를 목적으로 하여 살기 위한 신앙으로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서야 비로소 자신의 행동을 생각하며 잘못 된 행동들을 하나씩 하나씩 버릴 수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성령의 능력에 의해!!!
이 땅에서 일어난 역사의 기록을 하나님의 비밀로 알고 다시 풀면 사람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영의 몸이 행해야 할 영적 행동의 선함과 악함을 찾아 말할 수 있습니다.
보편적인 사람의 행동도 보이는 행동이 아닌 그 행동 속에 숨어 있는 것으로 하나님이 보시는
행동을 찾으면 사람의 눈으로나 인본주의적인 사람이 전혀 알 수 없는 영의 행동이 있습니다.
사람은 타인의 말을 듣기 보다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자기주의와 비교를 하면서 타인의 논리를
자기의 논리로 바꾸기를 원합니다.
사람은 자기와 다른 논리를 주장하면 타인의 논리에 대해 반박을 합니다.
그리고 그 반박의 끝에 자기의 논리가 반박을 받으면 논리에 대한 전쟁이 아니라 자존심의
전쟁으로 비화하여 싸우고 돌아서서 편이 갈라지게 됩니다.
또 자신의 모든 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더라도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기보다는 자기의
잘못을 가리려고 반응하게 되어 있고, 자격지심이나 열등감이 작용하면 자기 성찰과 상대 존경은
뒤로 하고 상대방보다 우월하다고 말할 수 있는 꺼리를 만들거나 타인의 비난거리를 찾아 들추어
낸다던가 하는 수를 쓰기도 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사람의 보편적 행동을 자세히 살펴보면 사람들은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자신을
자랑하고 싶어 하도록 만들어졌으며, 그 자랑이 통하지 않으면 싸우고 그 싸움마저 통하지 않으면
낙심하고 상처받으면서 그 결국에는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생각을 하도록 만들어져 있다는 것
입니다.
즉 육신 중심의 모든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인간의 모든 방법을 버리기로 작정하고
하나님께 부복을 하지 않은 인본주의적인 사람은 하나님의 방법을 안다고 해서 하나님의 방법을
따를 수 있는 길이 사람에게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타인 중심의 사람에게 선악과를 먹은 것이라고 하는 정죄 안에서 온전한 영으로 변화 받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것을 생각 할 수 없도록 그 생각인 네페쉬(영의 생각)를 죽였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과 그 근위대의 대장 느부사라단이 등장하는 것이며 십 구년
오월이라는 기한이 등장한 것입니다.
물론 그 영을 위한 예언이라는 것도 지금 교회들이 무속인들과 같이 헌금 얼마를 하면, 금식 얼마를 하면, 어떻게 행동하면 이라는 등등의 현실세계에서의 변화가 아닌 마음 세상에서 지금 자신의
영적 상태에서 찾아야 할 것으로 어떤 믿음을 가져야 하는 것인가를 하나님이 예언이라고 설명
하신 것을 이해해야만 기복주의 신앙 안에서 행하여지는 모든 예언들은 성경에서 찾아보면
점쟁이 무당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예언자입니까?
아니 우리는 어떤 예언을 따라 사십니까?
기도하는 종들입니까?
그들은 우리의 마음 상태를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우리들의 행동에서 찾는 잘못된 행실만 기도 중에 알게 되어 타인에게 우리의 그 잘못을 발설하여 우리들이 망신을 당하도록 만든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잘못된 영의 모습을 벌거벗은 몸으로 비유하시고 오직 우리의 남편이신 예수님 앞에서만
벌거벗어야 한다고 하시기도 했습니다.
속살을 드러내고 사는 것을 행복으로 또 자랑으로 알고 행하는 지금 시대가우리 기독교에게는
사람 앞에 의로움을 나타내려고 애쓰는 것으로 남편 아닌 간부(奸夫) 앞에서 옷을 벗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에스겔서로 보여주고 계십니다.
포도원을 관리 감독하며 농부가 된다는 뜻은 즉 예수님과 하나 된다는 것은 이 땅에서 있어야
할 일입니다.
정말 계시록 22장의 말씀처럼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성에 들어가기 위해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십니까?
정말 하늘에서 부으시는 일곱 대접의 심판을 받아 천국에 가기 전, 이 땅에서 어린양의 신부가
되고 성에 들어갈 자격 얻기를 바라십니까(계 21:7-27)
“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 (계 21:7)
세상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기적을 바라기 보다는 천국을 뜻하는 하나님의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자기의 영 안에서 열심을 다하며 하나님과의 화평을 목적으로 살면서 인본주의적인 생각과 성품과 행동을 찾아 자기를 쳐서 하나님 앞에 복종 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귀히 여겨 주기를 바라십니까?
우리가 자신을 높이려 하면 세상은 그 몸이 하는 말을 보고 비난하게 됩니다.
세상 사람이 우리를 귀히 여겨 주기를 바란다면 하나님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 안에서
타인이 자신을 비난 하다고 하는 것을 의식 할 수 없는 생활이 되어 지고, 그들이 정말 자신의
영을 사랑하기 때문에 저 사람이 존재한다고 하는 인식이 가득 찰 때까지 자신을 쳐서 하나님
앞에 제물로 잡아 드리는 영적 생활이 있어야 합니다.
요즈음 기독교 카페나 신문사 홈피 등에 들어가서 보면 서로의 주장을 가지고 뜨거운 논쟁들을
벌립니다. 내용이야 당연히 자기가 알고 있는 신앙이나 신학의 차이에서 자신의 옳음을 인정받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그 방법을 보면 끝까지 자기의 주장만 옳다고 하며 끝까지 자기만 인정해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반대의 입장에서 본다면 자신의 의견은 처음부터 끝까지 틀린 것이 되는데 자신의 것이
틀렸다고 말하면서 너만 옳다고 말해 줄 사람이 있을까요?
사람은 누구나 다 세상의 것들을 경험하지는 않습니다.
험한 정치의 세계, 자연과 함께하는 농부의 세계, 생각으로는 모두 다 판단하고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지만 그 아무라도 자기의 생각을 말한 것으로 전문가를 비난하는 것입니다.
그럼 비난받는 자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 본다면, 과연 비난을 받으면서 상대가 옳다고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억지입니다.
세상은 내가 인정 할 수 있는 것을 타인이 뭔가를 보여주어야 믿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정한 원리 안에 찬송도, 영광도, 전도도, 예배도 모두 우리들이 몸으로 보여
주고 그들의 인정을 받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며, 그들이 우리를 인정하는
그 날은 하나님이 우리를 인정하는 날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벧전 2:11,12).
“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 (벧전 2:11,12)
그러므로 우리들의 생각과 가슴에 모셔야 할 구원자 메시아는 우리들이 버려야 할 것을 버림으로
우리들이 포도원의 농부가 되고 지배자가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은 생활에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 생활은 자신을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변화되기를 목적하여 예수 그리스도 화 되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사람들과 하나님과 온전한 화평을 이루는 온전한 십일조로 드러납니다.
그 십일조의 또 다른 결과는 세상에서 얻게 되는 것으로 하나님이 사람들을 통해 주시는 영화와 영광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방법에서 우리들은 우리 자신 스스로 자신의 미래에 대한 예언을 할 줄 알아야 하며,
그 예언을 이루기 위해 버려야 할 인본주의적인 영의 행실들을 하나님의 감동 그 안에서 버릴 수
있는 힘을 하나님께 받아야 합니다.
그 힘을 받는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자신 안에 끌어 들이는 것으로 오직하나님께서 그 일을
이루어 주신다는 믿음을 붙들고 인본주의로 살고 싶어 하는 육의 소욕과 싸워 하나님께 자신의 의지를 몸으로 하는 기도로 보여드리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보시면서 말씀이 이해되신다면 몸이 하는 행동에서 목적하는 의도보다 몸이 하는
행동 그 안에서 찾는 것으로 남이 보는 자신의 말, 하나님이 보시는 그 행위의 말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고, 찾아 놓은 육신 중심의 영의 말을 죽이고 찢어 각을 뜨고 불에 태워 제물로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귀한 믿음의 지체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글쓴이- 흰돌
http://cafe.daum.net/awakehous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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