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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기도는 우물물을 긷는 것처럼 마음을 길어내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펌) 조회수 : 1674
  작성자 : 리아 작성일 : 2009-02-25

2006. 1. 20.

    아 3:1 “내가 밤에 침상에서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찾았구나. 찾아도 발견치 못하였구나.”

    하루 종일 일하다가 지친 부부가 밤 시간에 침상에서 서로 만나 이야기하는 것처럼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고 교제하는 것도 새벽 시간보다 밤 시간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새벽은 일단은 졸음이 쏟아지는 시간이지요. 잠자다가 자명종이 울려서 억지로 깨어서 교회에 와도 사람이 정신적으로는 안 깨어 있습니다. “좀 더 자자. 좀 더 눕자.” 이런 메시지가 오지, “기도하자♪ 우리 마음 합하여~” 영에서 이런 메시지가 안 옵니다.

  오랫동안 밤 문화가 축적되어 왔기 때문에 현대인들은 전반적으로 야행성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새벽 기도보다는 밤 기도가 더 좋습니다. 새벽 기도는 어떻게 보면 때우기 식이고 형식이 되어버리고 밤에는 진짜 인격적으로 주님 앞에 다가가기 쉬운 것 같습니다. 새벽보다 밤에 실제적으로 주님의 임재가 더 강하게 느껴지고 내 마음을 실제로 주님 앞에 쏟아 놓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밤에 침상에서 하는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마치 어린 자녀들이 부모를 찾아올 때 참 기쁜 것처럼, 연인이 데이트할 때 기쁜 것처럼, 언제 만나도 기쁜 것처럼 우리가 언제라도 주님을 찾아가면 주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신앙생활의 성패는 거기에 달려있습니다. 하루에 내가 몇 번이나 주님을 찾느냐? 사실 새벽 기도 나오고 하루 종일 주님을 찾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꼭 긴 시간이 아니라도 괜찮습니다. “한 시동안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라는 말씀 때문에 한 시간 이상 기도 안 하면 기도 안 한 것처럼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썬다 싱의 책을 보면 썬다 싱은 “하루에 20분만 기도해라. 그러면 삶이 변화될 것이다. 예수님을 영적으로 알게 될 것이다.”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 사실입니다. 단, 우리가 자주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기가 무슨 기도하는지도 모르면서 멍하게 한 시간 채우는 것보다 실제적으로 내 마음을 주님과 교류시키고 흘려보내는, 어떤 기도라는 룰이나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방 안에 조용히 들어가 가장 편한 자세를 취하고 기도하세요. 우리 주님은 우리가 눈을 감고 뜨고, 무릎을 꿇는 것을 보시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내 마음을 주님께 흘려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론 정기적인 기도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들이 아주 약해서 별 것 아닌 거 때문에 구멍이 생기고 넘어지곤 합니다. 그래서 정규적인 기도를 기도가 잘 안 돼도 해야 됩니다. 정규적인 기도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진짜 큰 은혜가 언제 임하느냐 하면 비정규적으로 주님 앞에 아무 때나 나아갈 때입니다. 혼자 주님과 은밀한 시간을 갖기 위해서 생활 중에 틈이 있을 때 골방이나 조용한 곳에 가서 편한 자세로 주님 앞에 나가고, 주님 앞에 머물고 그렇게 기도하는 시간을 10분도 좋고 20분도 좋아요. 그런 시간을 하루에 한 번만 가져도 굉장히 영이 살아나고 새로워지고 주님의 임재와 은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루에 그런 시간을 두 번만 가져도 획기적으로 달라집니다. 신앙생활 할 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신앙생활에 가장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밤에 침상에서 잠자려고 누웠는데 ‘내가 잠자기 전에 꼭 한 시간을 기도해야겠다.’ 이러니까 안 되는 것입니다. 부담이 되어서 ‘한 시간 채워야지.’ 애인을 만나서 얘기하는데 ‘한 시간 동안 얘기해야지.’ 이런 사람 없잖아요. 그냥 좋으니까 만나는 것이 되어야 하는데 한 시간이라는 강박 관념 때문에 기도가 종교적인 것이 되어버리고 생명력을 잃어버립니다. 인간이 약하기 때문에 정시기도는 안 하고 인격적인 교제만 하려하면 죽도 밥도 안 됩니다. 흐지부지 되어버립니다. 그러니까 정기적으로 기도하는 시간을 꼭 갖고, 그 뒤에 시간에 전혀 구애 받지 말고 5분 있다가 일어날 수 있고 10분 있다가 일어날 수 있고 30분이 될 수도 있고 한 시간이 될 수도 있고, 전혀 시간에 매이지 않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냥 내가 예수님이 좋아서 예수님 앞에 머물기 위해서 예수님과 함께 교제하고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보내는 그런 자유로운 시간이 우리들에게 필요합니다. 그런 시간이 우리에게는 생명줄 같은 시간입니다. 그런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너무 중요합니다.

  보통 새벽 기도하는데 본문에 보면 “내가 밤에” 시간도 파격적입니다. “침상에서” 장소도 파격적입니다. 꼭 교회 와서, 기도실에 들어가서가 아니고 침실에서, 편히 쉬는 곳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찾았구나.” 꼭 기도하기 위해서, 회개하기 위해서 응답받기 위해서 무엇을 얻어내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고 그냥 사랑하는 주님을 찾는 것입니다. 그냥 사랑하는 주님을 찾고 사랑하는 주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왜 나는 한 시간 기도를 해도 변화가 없지?’ 한 시간 기도를 해서 변화가 없는 것입니다. 한 시간 주님과 교제를 했으면 변화가 될 것인데. 단 20분이라도 주님과 교제했으면 변화가 될 터인데. 여러분, 한 시간 기도하겠다고 기도한다고 해도 진짜 주님과 교통하는 시간이 몇 분이나 될 것 같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한 시간 기도한다 하면서 주님과 교제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 생각, 저 생각하다가 중얼중얼하다가 한 시간 지나가고 실제로 알맹이가 별로 없습니다. 기도가 잘되고 깊이 들어가고 주님과 교통할 때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보면 알맹이가 별로 없습니다.

  기도는 샘물을, 우물물을 긷는 것처럼 속에서 마음을 길어내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 물 쏟듯 쏟으라.” 비유를 들자면 우물 깊은 속에 물이 있지 얕은 데는 물이 없잖아요. 마찬가지로 우리가 기도할 때 얕은 데 있는 생각들, 잡념들을 쏟아내는 것을 기도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런데 기도 중에 상당한 시간이 그렇게 지나갑니다. 우리의 마음을 쏟으려면, 우물 속 깊은 곳 즉 우리의 영에서 마음을 길어내야 합니다. 그냥 생각들 말고 마음을 길어내어 마음을 쏟아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게 마음으로 기도할 수 있으면 마음으로 기도하세요. 꼭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만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마음으로 기도할 수 있을 때는 저는 방언보다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맨 날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보다 내 마음으로 진실로 기도할 수 있을 때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하는 많은 시간에 마음으로 기도가 안 됩니다. 그냥 생각으로, 말로 기도하고 상투적으로 기도할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는 무조건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기도할 때, 기도 줄이 안 잡히면 기도 줄이 잡힐 때까지 무조건 방언하세요. 기도할 때 특별히 떠오르는 것이 없으면 어차피 마음으로는 기도가 안 되니까 방언으로 기도하세요. “내가 마음으로 기도하고 또 영으로 기도하리라. 내가 마음으로 찬양하고 영으로 찬양하리라.” 고린도전서 14장에 나온 것처럼 마음으로 기도할 수 있을 때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마음으로 기도가 안 될 때는 모든 시간을 영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기도가 어차피 안 되는데 생각이나, 잡념이나 늘어놓고 마음이 안 담긴 말을 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데, 중언부언하는 것도 아니고 외식하는 것도 아니고 꼭 외식이 아니라 해도 기도가 중언부언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니까 오늘부터 새벽 기도든지 다른 기도회든지 꼭 이렇게 기도하세요. 마음으로 기도가 안 될 때는 무조건 방언으로 기도하세요. 방언으로 기도하면 내 마음이 못 알아들어도 영으로 기도하는 것이고, 방언 기도는 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영을 깨웁니다. 영을 활동하게 합니다. 그리고 영이 깨어서 일어나고 활동하면 마음으로 기도할 수 있게 됩니다. 영이 깨어나면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영이 깨어나면 주님이 내게 말씀할 수 있고 주님의 계시가 내게 임합니다. 주님의 계시가 임하고 주님의 음성이 들리면 베데스다 연못물(요 5:2)처럼 마음을 동하게 만들기 때문에 마음으로 기도하게 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 괜히 새벽기도 나와서 몽유병 환자처럼 멍하게 기도하지 말고 마음으로 기도하지 않을 때는 계속 방언으로, 영으로 기도하십시오. 그래서 영을 깨우십시오. 정신만, 육신만 깨어 있다고 기도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깨어 있어 기도하라.”는 말은 육신의 잠을 깨어 있으라는 말도 되지만 영이 깨어 있으라는 말도 됩니다. 두 가지 다를 의미합니다. 인간은 영혼과 육신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육신의 잠은 깼는데 영이 잠자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낮이기 때문에 육신적으로는 깨어서 생활을 해도 영이 잠자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예배 참석해서 말씀 듣는 것은 영의 활동입니다. 영으로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귀 있는 자는 들어라.” 이것은 영으로 들으라는 말씀입니다. 말씀을 들을 때 영이 활동하면서 은혜를 받는 것이고 그 다음에 합심기도하면 기도가 잘되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예배 때 찬양을 하는데 찬양은 영의 활동이잖아요.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신령)과 진리(진정)로 예배할지니라.”(요 4:24) 찬양을 목구멍으로만 하면 그것은 혼적 활동이고 영은 계속 자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기도가 잘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찬양할 때나 말씀을 들을 때 영을 활동시킨 다음에 기도하면, 기도가 처음부터 주님의 임재 속으로 들어가고 주님과 교통이 되고 우리 마음을 깊은 데서 퍼 올려서 주님 제단에 우리 마음을 물 쏟듯이 쏟아 붓는 그런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잠자다가 와서 무슨 영이 활동합니까? 밤에 잠자기 전에 기도하고 주님과 교제하고 자기 영을 활동시킨 여운이 남아 있는 사람은 육신의 잠을 잤어도 영이 깨어 있었기 때문에 새벽부터 기도가 잘 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때는 영은 잠자고 있는데 나와서 기도하니까 혼만 뱅뱅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 생각, 저 생각 무엇을 기도해야 될지 모릅니다. 이것 저것 생각나는 대로 얘기하는 것을 기도하는 것이라고 착각하는데 그것은 중언부언입니다. 그것은 종교적인 것입니다. 영을 활동시켜서 영으로 기도하고 그 후에야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여러분이 기도하러 왔을 때는 속에서 기도의 소원이 솟구치고 기도해야 할 말들이 떠오르고 마음에 감동이 되고 주님이 좋고 주님께 마음이 끌림으로 마음으로 기도할 수 있는 상태가 되지 않으면 무조건 처음부터 방언으로 기도하십시오. 괜히 말 만들어내려고 하지 말고. 내 영이 깨어서 활동할 때까지 방언으로 기도하십시오. 그래서 이제는 생각을, 말을 쏟아내는 것이 아니고 내 영 깊은 곳에서 마음을 퍼 올릴 수 있을 때까지, 그래서 주님 앞에 내 마음을 물 쏟듯이 쏟을 수 있는 기도가 될 때까지 무조건 방언기도하십시오.

  이 원칙을 꼭 기억하십시오. “내 영이 깨어 있을 때는 마음으로 기도한다.” 그때는 방언으로 기도할 수도 있지만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에 내 영이 충분히 깨어 있을 때는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그 다음에 “내 영이 깨어 있지 않을 때는 내 영을 깨우기 위해서 진정한 기도를 하기 위해서 무조건 방언으로 기도한다.” 그러면 우리 기도생활에 많은 손실을 없앨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한 시간을 기도했는데 영의 충족감도 없고 알맹이가 없는 때가 많습니다. 그것은 기도하는데 지혜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이제부터는 여러분이 그렇게 기도하셔서 기도의 질을 높이시고 기도의 효율을 극대화하시기 바랍니다.

  나아가서, 정기적인 기도 시간 외에 수시로 주님이 좋아서 주님을 찾아갈 때 주님이 굉장히 기뻐하십니다. 주님과 우리는 아직 결혼하지 않았기 때문에 연애 기간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께 “약속 시간, 새벽 시간에 주님 꼭 만나요.” 하고 그런 시간 외에 예수님이 일 보고 계신데 갑자기 불시에 애인이 보고 싶어서 왔다하면 얼마나 기분이 좋겠어요? 여러분, 그런 행복을 주님께 드리시기 바랍니다.

  삶 속에서 주님께 놀라운 기쁨을 드릴 수 있습니다. 정규적인 정해진 기도 시간 외에 여러분이 ‘내가 주님을 보고 싶습니다. 내가 주님을 원합니다. 내가 주님을 갈망합니다. 주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원합니다.’ 그러면서 어디 고요히 틀어박혀 있는 것입니다. 버스 안에서도 멍하니 창밖을 보고 버스 타고 다니지 말고 그 시간을 지성소로 만들 수 있습니다. 버스를, 전철을 지성소로 만들 수 있습니다. 언제든 의식적으로 ‘내가 지금부터 언제까지 주님을 찾겠다. 주님 앞에 머무르겠다. 주님 앞에 나아가겠다. 주님의 얼굴을 구하겠다.’ 이런 시간을 가지면 그것을 주님이 굉장히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영을 굉장히 새롭게 하고 풍성하게 합니다.

  기독교는 종교가 아닙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기독교는 예수님이시고 기독교의 신앙은 예수님과 나와의 관계입니다. 예수님과 나와의 만남이고 경험이고 관계고 교제지, 무슨 기도하고 이런 종교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정규적인 기도 시간에는 영이 깨어 있으면 마음으로 기도하고, 영이 깨어 있지 않을 때는 방언으로 기도해서 영을 깨우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마음으로 기도하든 영으로 기도하든 고린도전서 14장에 나오는 것처럼 이 두 가지를 그때그때 상태에 따라서 잘 선택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기도의 효율을 떨어지고, 한 시간을 기도해도 기도가 다 새어나가 버립니다. 한 시간 기도하면 잘하면 30분, 보통은 15분 건지지요. 기도 안 하다가 어쩌다가 기도하면 새로워서 기도의 효율이 높아집니다. 그러나 맨 날 기도하면 효율이 자꾸 떨어집니다. 나중에는 한 시간 기도했는데 옛날에 기도 안 하고 사는 것같이 영혼이 허한 것입니다. 한 시간 기도해도 기도의 효율이 5분, 10분도 안 되는 일들이 벌어집니다. ‘처음 기도할 때는 그렇게 기쁘고 행복했는데 기도를 계속 열심히 하면 더 내용이 채워져야지 왜 점점 김이 빠지고 무미건조해지는가?’ 기독교인이라면 이런 고민을 누구나 해보았을 것입니다. 그것은 영을 깨우지 않은 상태에서 생각을 나열하는 기도를 해서 그렇습니다. 말을 쏟는 기도를 해서, 기도가 중언부언이 돼서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반드시 영으로 하는 기도인 방언 기도를 통해서 영을 작동시키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하지만, 일단 내 영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계시가 옵니다.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 하셨는데 그때는 생각을 막 쏟아내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기도해야 될지 정확하게 알게 됩니다. 무엇을 회개해야 할지, 무엇을 구해야 할지를 선명하게 알게 됩니다. 그래야 마음의 샘물을 길어내면서 기도하게 됩니다. 이 방법을 잘 사용하면 기도의 효율이 굉장히 극대화 됩니다.

  여러분, 자기가 기도하고 나서 무엇을 기도했는지 모르는데 하나님이 어떻게 알겠습니까? 예수님은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시는데, 한 시간을 기도했는데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하게 말한 것이 없어요. 그러니 무슨 응답이 있겠습니까? 영으로 기도함으로 기도에 대한 계시가 임해서 마땅히 빌 바들이 내 영 속에, 내 마음 속에 새록새록 느껴짐으로 그것을 내가 길어내서 주님 앞에 올려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기도의 향연이 되어서 하늘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래야 열납 되는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냥 이런저런 잡생각을 늘어놓으면서 종교적으로 중언부언하는 기도가 어떻게 주님께 열납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제가 말씀드린대로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덤으로 생활 속에서 자주 주님 앞에 큰 기쁨을 드리십시오. 정해지지 않은 시간에 불쑥 주님을 찾아가십시오. 군대에 있는 애인에게 미리 전화하고 가도 반가운데 전화도 안 하고 불쑥 찾아가면 얼마나 반갑고 기쁘겠습니까? 주님도 똑같습니다. 주님과 우리의 관계는 인격적인 관계입니다. 업무적인 관계가, 종교적인 관계가 아니라 주님과 우리의 관계는 연인 관계입니다. 우리가 언제 찾아가든지 주님은 입이 벌어지십니다. 정규적인 시간을 갖고, 인간은 부족하기 때문에 그런 규칙이 필요합니다. ‘나는 인격적으로만 주님과 교제하겠다.’ 그것은 금방 깨지게 되어 있습니다. 정규적인 기도 시간을 갖고 그 다음에는 주님 앞에 인격적으로 자유롭게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너무너무 좋아하십니다. 하루에 두어 번 그러면 주님이 너무너무 좋아하셔서 아끼는 것 없이 막 부어주십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기도하면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지신명께 비나이다.” 조상들로부터 이게 유전이 되어가지고 철야기도, 작정 기도한다고 ‘기도 시작!’ 하고 거머리처럼 마구 ‘다고다고’ 기도합니다. 그렇게 거머리처럼 기도하니까 주님은 징그러우신 것입니다. 메추라기를 얻는 것처럼 ‘다고다고’하니까 징그러워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영은 황폐하고 영은 채워지지 않고 영에는 기쁨이, 생명이 없습니다. 이제 그런 식으로 기도하는 것 그만합시다.

  우리가 마음을 끌어올리는 기도를 하고 또 주님 앞에 인격적으로 나아가 주님께 큰 기쁨을 드리면 주님이 마음에 감동하십니다. 헤로디아의 딸 살로매가 헤롯 앞에서 춤을 췄습니다. 헤롯이 음란한 인간이니까 음란한 춤을 췄습니다. 헤롯이 완전히 거기에 매료되어서 “무엇이든지 너 원하는 것을 내게 구하라. 내가 주리라 하고 또 맹세하되 무엇이든지 네가 내게 구하면 내 나라의 절반까지라도 주리라”(막 6:22,23) 이것은 악한 것이지만 여기서 원리를 배워야 합니다. 주권자에게 기쁨을 드려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무엇을 ‘다고다고’해 가지고 얻을 생각하지 말고 왜 기도를 해도 거지처럼 기도를 합니까? 거머리처럼 ‘다고다고’하고 금식하고 철야하고 이래서 얻는 것이 아니라 줘도 기분 좋게 줘야 하고 받아도 기분 좋게 받아야 합니다. 기쁨을 드리면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기쁨이 정규기도 외에 주님 앞에 주님이 좋아서 찾아가는 것입니다. 예기치 않은 시간에 주님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께 최고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뭐가 기쁘겠습니까? 선물 받는 것이 기쁘겠습니까? 뭘 사는 주는 것이, 나를 위해서 일을 해주는 것이 기쁘겠습니까? 그게 아니라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면 상대가 제일 기쁜 것입니다. 상대가 내가 좋아서 만나자고 불시에 찾아오면 그것보다 기쁜 게 없습니다. 우리가 그것보다 주님을 더 기쁘게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정규적인 기도 외에 그냥 주님이 좋아서 주님을 더 알고 만나고 구하기 위해서 비정규적으로 불시에 찾아가는 것이 주님의 마음에 큰 기쁨입니다. 주님께 큰 기쁨을 드리는 것입니다.

  주님은 사랑이시고 우리를 주님과 교제하기 위해서 만드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제일 원하시는 것은 교제지, 일이나 전도가 아닙니다. 전도가 귀중한 것이지만 그게 아닙니다. 우리를 애초에 전도하라고 만든 것이 아닙니다. 교제하려고 만든 것입니다. 샨 볼츠 친구의 간증처럼 주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잘 보낸 사람이 천국에서 제일 존귀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 그것이기 때문에 주님 앞에 불시에 나아가서 주님께 큰 기쁨을 드리면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게 무엇을 원하느냐?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 그때 성령이 임하고, 기름부음이 임하고 은혜와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바꾸시기 바랍니다. ‘다고다고’식의 기도를, 이제 연인끼리 만나서 속삭이는 기도로 바꾸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 신앙생활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 영적생활에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주님은 사랑이신데 우리가 너무나 인격적으로 주님 앞에 나가지 못한 것을 회개합니다. 사실상 중언부언하는 기도를 할 때가 많았고 기도의 효율을 높이지 못하고 많은 기도 시간을 낭비한 것을 회개합니다.

  지혜가 없어서 그랬습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기도할 때 내 영이 활동하지 않는데 생각으로 기도하고 말로 기도하지 말고 방언을 통해서 내 영을 깨우게 해주소서. 그래서 영이 깨어 일어나면 영이 듣고 보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계시를 받는 상태가 된 것입니다. 방언기도는 영을 깨우고 영을 활성화시킵니다. 그래서 주님의 음성을 듣게 만듭니다. 그때 우리는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성령으로 말미암아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고, 그때 우리는 피상적이고 상투적인 기도가 아니라 우리의 영으로 무엇을 구해야 되는지 분명하게 알고 마음을 길어 올려서 주님 앞에 물 쏟듯이 쏟으며 기도할 수 있게 되고 주님께 열납되는 기도를 하게 될 줄 믿습니다.

  마음으로 하는 기도와 영으로 하는 기도를 잘 병행하게 해주시옵소서. 그때그때 지혜롭게 잘 배합하고 병행함으로 말미암아 기도의 효율이 극대화되게 하여주옵소서.

  정규적인 기도는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훈련되어야 하고 우리는 연습해야 합니다. 경건의 연습을 연습해야 합니다. 정규적인 기도는 필요한 것이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일을 위해서 만드신 것이 아니라 교제를 위해서 만드셨기 때문에, 주님이 우리를 정말로 사랑하시기 때문에, 불시에 주님을 찾아가고 주님의 얼굴을 구하는 시간을 갖는 것은 주님께 가장 큰 기쁨을 드리는 것입니다. 주님의 얼굴에 정말로 함박웃음을 짓게 만드는 것입니다. 주님의 심장을, 가슴을 뛰게 만드는 것입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즐거워하시게 하는 것입니다.

  오 주님, 우리가 조금만 마음을 쓰면 주님께 이토록 놀라운 기쁨을 드릴 수 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무슨 엄청난 헌금을 드려야 되는 것도 아니고, 엄청난 시간을 드려서 봉사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엄청난 용기를 가지고 남의 집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서 거절하는데도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조금만 생활 속에서 마음을 쓰면 주님의 마음에 그토록 놀라운 기쁨과 즐거움과 행복을 드릴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 주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지어주셨다는 것이 너무나 놀랍고 신기합니다. 우리가 이제부터는 그런 놀라운 기쁨을 안겨드리는 매일매일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그래서 거머리처럼 ‘다고다고’ 해서 억지로 얻어내고, 마치 고기를 구해서 메추라기를 얻었지만 영혼은 황폐케 됐던 이스라엘 백성처럼 우리 영혼이 황폐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기쁨을 드림으로 주님께서 솔로몬에게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너는 내게 구하라.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나라의 절반이라도 네게 주겠다.”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시고, 그래서 풍성한 은혜와 축복과 풍성한 기도 응답 가운데 살아가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 두 가지 기도의 방식을 통해서 우리 영적 생활, 기도 생활에 혁명적인 변화가 다가오게 하옵소서. 혁명적인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게 해주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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