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지옥에서는 어떤 형벌을 받는가? | 조회수 : 2062 |
작성자 : 순천자 | 작성일 : 2009-10-01 |
지옥에서는 어떤 형벌을 받는가?
때가 바야흐로 마지막 때입니다. 두렵고 떨리시나요? 아님 "주님 사모합니다. 어서 오시옵소서"라는 고백으로 충만하고 행복하며 감사가 되시나요? 분명 우리 모든 회원님들은 "주님 어서 오세요. 보고 싶어요"라고 고백하시며 날마다 신부단장 하시고 계시리라 봅니다. 이미 신부단장 마치시고 죄와는 상관없는, 세상과는 상관없는 믿음생활 충만히 하시는 분들도 계시겠구여.
그런데요 우리가 휴거의 날짜를 알고 있다하여 휴거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휴거는 믿음으로, 즉 주님이 "너는 믿음이 있으며 내 자녀다"라고 인정받을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으로부터 믿음을 인정받지 못해 휴거받지 못한 영혼들은 이 땅에 떨어져 7년환난을 겪으며, 환난 중반 이후에 진행될 이삭줍기 구원의 문턱에도 들어가지 못한다면 지옥으로 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럼 도대체 지옥의 형벌이 어떠하기에 우리가 반듯이 지옥을 피하고 천국으로 들어가야하는 것일까요!!!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 풀어주신 지옥의 세계를 경청함으로써, 믿는다 하면서도 여전히 죄를 짓고 세상과 짝하며 살아가는 영혼들이 돌이키기를 바랍니다. 또한 아직 주님을 영접치 않은 영혼들은 겸비한 마음으로 속히 주님을 영접하여 사랑의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심을 깨우쳐 하나님 아버지와 참 사랑을 주고받는 자녀로 나오시기를 기도하는 마음입니다.
지옥(아랫음부)의 영혼들이 받는 형벌은 이 땅에서 살았을 때 행한 죄악에 따라 각기 다릅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영혼들이 이 땅에서의 행함에 따라 영광과 상급을 달리 받는 것처럼, 지옥에 들어가는 영혼들도 죄의 경중과 악의 깊이에 따라 고통과 슬픔의 정도가 달라지는 것이지요.
죄악에 깊이 물든 영혼일수록 더욱 깊은 곳으로 들어가게 되며, 죄가 무거운 만큼 받는 고통도 더 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과 상반되게 더 깊이 들어갔느냐에 따라 즉 악의 근원인 루시퍼의 죄악을 얼마나 더 닮아갔느냐에 따라 아랫음부의 더 깊은 곳에 처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7~8절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 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말씀하신 것처럼 반드시 자신이 심은 대로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옥(아랫음부)으로 떨어진 사람들이 받는 형벌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일까요?
죄의 경중에 따라 4단계로 나누어 설명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너무 자세히 설명하면 두려움이 가중될 수 있기 때문에 좀더 깊이 있게 다루지 못하는 점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1단계 형벌 : 바위나 모래, 끓는 물, 얼음 등 생명이 없는 무차원적인 것들에 의한 형벌
어떤 영혼들은 사막의 모래보다 7배나 더 뜨겁게 달궈진 모래 위에 세워져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사방으로 끝없이 모래 사막이 펼쳐져 있으니 달아날 곳도 없고 뜨거움과 통증을 견디질 못해 진저리가 쳐지지요.
여러분은 한여름에 직사광선에 뜨겁게 달궈진 모래밭을 맨발로 걸어 본 경험이 있는지요? 우리나라 해변에서도 10분, 15분을 맨발로 계속하여 걸으려면 결코 쉽지 않습니다. 더구나 열대 사막의 모래는 훨씬 더 뜨거운데 그보다 7배나 더 뜨거운 지옥의 모래라면 어떠하겠습니까?
너무 뜨겁고 고통스러워 이리저리 뛰어 보지만 결코 피할 수도 없고 벗어날 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아랫음부에서 받는 고통 중에 가장 가벼운 1단계 형벌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영혼들은 아랫음부에서 벌겋게 달궈진 바위 위에 올려져 마치 석쇠 위의 고기처럼 지글지글 구워지는 형벌을 받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위에서도 뜨겁게 달궈진 다른 바위가 내려와 몸을 짓누르게 되니 마치 쥐포나 마른 오징어처럼 납작하게 구워지게 되지요.
뜨거움도 뜨거움이지만 바위 사이에서 눌리는 압력을 이기기 못해 사지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으드득 으드득 들립니다. 갈비뼈가 부서지고 그 속에 있는 내장이 터지며, 머리가 짓이겨질 때에는 안구가 튀어나오고 두개골이 바스러지면서 뇌수가 흘러 나오게 됩니다.
이 영혼이 받는 고통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비록 이 땅에서와 같은 육체를 갖고 있지 않다 해도 영계에서 받는 고통은 이 땅에서 살아 있을 때와 같이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비명과 함께 "어떻게 이 고통을 면할 수 있을까?" 고뇌하며 한숨을 쉬고 탄식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 것입니다.
토마스 주남님의 "천국확" 책에 보면 지옥을 보고 오신 간증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모래사막 같은 곳에서 영혼들이 고통스러워하며 형벌을 받는 모습을 묘사한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지옥의 형벌 1단계에 해당되는 형벌을 받고 있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2단계 형벌 : 뱀이나 독수리등 징그러운 짐승이나 새와 같은 동물들에 의해 물리고 찢기는 형벌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결국을 통해 우리는 아랫음부의 참혹함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의 감동 속에 아랫음부에서 고통받고 있는 한 영혼의 소리를 들려 주신 것을 전해 드릴테니 많은 깨우침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끌려 다니며 심히도 많이 끌려 다니며
내가 뛰어도 뛰어도 끝이 없나이다.
뛰어도 뛰어도 끝이 없나이다.
냄새나고 싫은 곳에서 나의 껍질이 벗겨지고 피 흘릴 때
벌레들이 나와서 살을 먹는데
벌레를 피하고자 내가 달리고 달리고, 달리고 달려도
여전히 그 자리임이니이다.
계속 달리고 달려도 여전히 와서 나를 물어뜯나이다.
내 살을 뜯어먹나이다. 내 피를 빨아먹나이다.
내가 두렵고 떨리나이다. 어찌하오리이까?
내 말을 전하여 많은 자가 이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이곳으로 오지 아니하도록 하소서.
심히도 두렵고 떨리며 어찌할 바를 모르나이다.
달리고 달려 숨을 곳이 어디 있나 둘러보아도 캄캄하며
아무것도 없으며 내 이 몸 하나 피할 곳이 없음이니이다.
나를 뒤에서 긁나이다. 내 팔을 물어뜯나이다.
내 피부를 벗기나이다. 내 힘줄을 먹나이다.
내 피를 빨고 있나이다. 내가 지금 이 고통 중에 괴로움 중에
있다가 훗날에는 불못에 떨어지겠나이다.
나는 어떡하리이까. 나는 어떻게 하나이까!
내가 주를 믿지는 않았으나 세상에 있을 때는
나도 선하게 살았다고 생각하였던 자였나이다.
내가 이곳에 와서야 내 악이 얼마나 컸던지 알게 되었으며,
이와 같은 형벌을 받게 되니
내가 얼마나 후회가 되고 후회가 되는지요.
정녕 나 같은 자가 없게 하소서.
사람의 생각으로는 선하다 생각하고
자기가 하나님 뜻대로 선다고 생각했으면서도
이곳에 온 자가 많이 있나이다.
믿는다 하면서도 하나님 뜻대로 살지 못하여
여기서 나보다 더 심한 고통을 받는 자가 많이 있나이다.
내가 이 고통을 이기지 못하여 잠시 이 시름을 잊고자
기절하고 싶어도 할 수 없으며,
내가 이 시름을 잊고자 잠시 눈을 감아 보아도
그 앞이 환하여 쉼을 갖지 못하나이다.
눈을 뜨면 끝없이 망망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아니하여
형벌을 피하여서 달리고 달려도 그 자리일 따름이니...
어찌하나이까! 이를 어찌하나이까!
나와 같은 자가 없게 하소서.
정녕 나와 같은 자가 없게 하소서..."
이 영혼은 그나마 선한 편이라 이처럼 벌레에 뜯기고 짐승에 찢기는 형벌을 당하면서도 자기와 같이 형벌받는 영혼이 다시는 없게 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랫음부에서 불꽃가운데 고민하며 자신의
가족들을 부탁하던 부자도 이런 경우이지요(눅 16장)
하지만 아랫음부의 3단계나 4단계에 떨어진 사람들은 그나마 이러한 선 자체도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대적하고 전부 남의 탓으로 돌리며 서로 물고 뜯으며 찢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의 인물 중에서 모세를 대적한 애굽의 바로 왕은 2단계의 형벌을 받고 있는데, 2단계 중에서도 비교적 심한 형벌로 3단계에 가까운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과연 애굽의 바로 왕이 이 땅에서 어떠한 악을 행했기에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었는지, 그가 아랫음부에서 어떠한 형벌을 받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재앙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강퍅했던 바로 왕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때에 모세는 하나님께로부터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해 나가라는 지시를 받고 애굽의 바로 왕을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바로 왕은 애굽의 노예로 부리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쉽게 보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바로 왕을 굴복시키고자 모세를 통해 열 가지 재앙을 허락하셨습니다. 하수를 피로 변하게 하셨는가 하면, 애굽 전역에 개구리와 이, 파리 떼가 들끓게 하시며 악질과 독종, 우박과 메뚜기, 흑암 등 온갖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그때마다 바로 왕은 재앙을 모면하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모세가 기도하여 재앙이 그치면 다시 마음을 강퍅하게 하여 약속을 어기고 핍박하기를 계속했습니다.
결국 애굽 온 나라의 모든 가정의 장자와 생축의 처음 난 것까지 다 죽는 장자의 재앙이 임하고 바로의 장자마처 죽고나서야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 주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또다시 마음이 변하여 군대를 보내 추격해 왔습니다. 모세가 믿음으로 홍해를 가르는 유명한 사건이 이 때 일어났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능으로 깊은 홍해가 갈라지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갈라진 바다 사이의 땅을 걸어서 건넜지만 뒤쫓아오던 바로의 군대는 다시 합쳐진 바다 속에 그대로 수장되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이방 왕들 중에서도 선한 중심 가운데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이 참 신이심을 인정하고 그 앞에 경배하며 겸비하게 행했던 왕들이 여럿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는 이렇게 크신 하나님의 능력을 열 차례나 경험하고도 여전히 강퍅한 마음을 변화시키지 않음으로 결국 자신의 장자를 잃었으며 온 나라가 피폐해지고 많은 군대를 몰살시키는 등 큰 재앙을 당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전해 듣거나 직접 보고 체험하면서도 여전히 바로 왕처럼 마음을 강퍅하게 하여 주님을 영접치 않으며 죄에서 돌이키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들 역시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을 대적한다면 바로가 지옥에서 받는 형벌의 단계에 함께 빠져들어 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바로 왕은 지금 아랫음부에서 어떤 형벌을 받고 있는 것일까요?
악취나는 물웅덩이에 갇혀 있는 바로 왕
그는 더럽고 악취나는 물웅덩이 속에 갇혀 있는데 주변을 둘러보지도 못할 정도로 몸이 단단히 조여져 움직일 수도 없습니다. 이 웅덩이에는 바로 왕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와 비슷한 죄목을 가진 많은 영혼들이 함께 있지요. 이 세상에서 권세를 잡은 왕이었다고 해서 여기서 더 나은 대우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남들보다 영화로운 자리에서 교만하고 섬김받고 남을 지시하고 명령하던 사람들일수록 지옥 사자들에 의해 더 많은 조롱과 고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왕이 갇혀 있는 웅덩이는 단순한 물웅덩이가 아닙니다. 이 땅에서 심히 오염되고 부패된 폐수를 한번 떠올려 보십시요. 얼마나 악취가 나고 더럽습니까?
간혹 항구 도시에 배들이 들어 차 있는 바다를 보면 얼마나 오염되었는지 두터운 기름 띠가 덮여져 들여다보기만 해도 속이 메슥거리는 액체로 가득 차 있지요. 물고기나 생물이 살기는커녕 손을 담그면 피부병이라도 생길 것 같습니다. 바로 왕이 바로 이런 물 속에 온몸이 푹 잠겨 꼼짝 못하게 갇혀 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웅덩이 속에는 무언가 꾸물꾸물하는 것이 가득 차 있어 자세히 보면 구더기와 비슷하지만 그보다 몇 배나 크고 희끄무레한 벌레들입니다.
벌레가 눈, 뇌 등 연약한 부분부터 갉아먹기 시작하여
이 벌레들이 물웅덩이에 갇혀 꼼짝 못하는 영혼들에게 달려들어 보드랍고 연약한 부분부터 갉아먹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눈을 갉아먹고 눈을 통해 머릿속에 파고들면 뇌까지 갉아 들어가 뇌수를 쪽쪽 빨아먹지요.
눈에 조그만 먼지가 들어가도 얼마나 쓰리고 따갑습니까? 하물며 벌레가 눈에 달라붙어 갉아먹으면 그 쏘는 고통이 어떠하겠습니까? 또 이 벌레가 눈을 뚫고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며 뇌수를 빨아먹을 때는 얼마나 엄청난 고통이 따르겠습니까?
결국에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조금씩 빠드득 빠드득 갉아들어 가게 됩니다. 이 고통을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까요? 어떤 분은 벌레의 조그만 침에 쏘여도 펄쩍펄쩍 뛰며 고통스러워하는데, 그보다 큰 바늘 같은 것이 여러분의 손톱이나 손끝을 찔러 들어간다고 상상해 보십시요.
또 날카로운 송곳으로 손등을 조금씩 벗겨낸다고 상상해 보십시요. 피가 철철 흐르는데도 아랑곳없이 껍질을 벗겨내고 근육을 하나하나 벗겨내며 뼈가 드러나도록 계속해서 긁어대는 것입니다.
손등만이 아니라 점차 팔과 어깨와 가슴과 배를 거쳐 다리와 엉덩이 등 온몸 전체를 마구 긁어댄다면 그 고통이 어떠하겠습니까? 이렇게 벌레들에 의해 피부가 벗겨져 피로 범벅이 되고 신경조직까지 갉아먹힐때는 몸서리가 나며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됩니다.
오장육부, 골수까지 갉아먹히는 고통이 계속 반복되고
한편 배를 뚫고 몸 속에 들어간 벌레들은 위, 간, 심장 등 오장육부를 하나하나 파고들며 심지어 날카로운 벌레의 입은 뼛속의 골수까지도 빨아먹지요.
대부분의 여자들은 꾸물꾸물하는 구더기가 한 무더기 모여 있는 것을 보기만 해도 기겁을 하고 달아날 것입니다. 만지기는커녕 보기도 싫은 것이지요.
하물며 구더기보다 몇 배 크고 흉측하게 생긴 징그러운 것들이 달려드는데도 꼼짝할 수 없고 바로 지켜보는 눈앞에서 피부와 신경과 뼛속 골수까지 서서히 갉아먹힐 때 그 고통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아마 이 땅에서 그런 고통을 10분만 당한다고 해도 정신이 돌아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대적한 바로 왕은 뼛조각 하나까지 다 갉아먹히도록 또렷한 정신으로 생생하게 모든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벌레에게 몸을 다 먹히고 나면 고통이 끝나는 것일까요? 결코 아닙니다. 잠시 후에는 먹힌 부분이 재생되어 그곳을 다시 갉아먹히게 되니 고통이 한도 끝도 없이 계속되지요.
마치 천국에서 과일을 따 먹으면 그 자리에 즉시 과일이 생겨나듯 지옥에서는 벌레가 몸을 갉아먹어도 금방 재생되고 회복되어 끊임없이 온몸을 갉아먹히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에는 나름대로 선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라 해도 복음을 전할 때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사람이 보기에 선한 것이지 정녕 진리 가운데 의롭고 선한 사람은 아니지요.
갈라디아서 2장 16절에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만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참으로 의로운 사람은 우리를 구속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사함 받고 구원에 이르는 사람입니다. 물론 마음 중심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행함이 따르게 됩니다.
무수한 창조의 증거들이 있는데도 신을 인정하지 않으며,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권능의 증거들을 보여 주는데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은다면 그만큼 양심이 강퍅하고 악한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나름대로 선하고 의롭게 살아간다고 해도 끝까지 복음을 듣지 않고 주님을 영접하지 않으며 결국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이들은 정욕을 따라 마음껏 범죄한 악인들보다는 낫기에 1단계의 형벌이나 2단계의 형벌 가운데 처하게 되지요.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죽은 사람 중에 양심심판을 통과하지 못해서 지옥에 온 경우도 대부분은 1단계나 2단계의 형벌 중에 있습니다. 그러나 온갖 악행을 하며 사람의 생명을 죽이려고 했던 장희빈과 같은 악한 사람들은 3단계 혹은 4단계의 형벌을 받게 됩니다
3단계 형벌 : 지옥사자들에 의해 고문당하는 형벌
아랫음부의 3단계와 4단계 형벌은 하나님을 대적했던 영혼들, 양심에 화인맞은 영혼들과 성령 훼방, 거역, 모독하며 하나님 나라를 훼방했던 영혼들이 당하고 있습니다.
가령, 하나님 나라를 훼파하려고 하거나 중상모략을 해서 이단으로 정죄하는 경우는 성령 훼방이기 때문에 지옥의 3, 4단계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 중에 좀 가벼운 사람이 3단계요, 더 악을 행하면 4단계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3단계에서는 지옥사자에 의해 여러 가지 고문을 당하게 되는데, 이 형벌을 이해하기 위해 사람이 고안해 낸 몇 가지 고문 방법들을 살펴봄으로 이해를 돕도록 하겠습니다.
그 전에 먼저, 아랫음부에서 고문하는 지옥사자들의 정체를 밝혀 드리겠습니다.
지옥사자들이란, 바로 창세 이전에 루시퍼를 따라 하나님을 대적함으로 타락한 하급 천사들입니다.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유 1:6)
이들은 하나님께서 백보좌 대심판 때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지옥에 가두셨기에 마음대로 세상에 나올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귀신들이 바로 타락한 천사들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귀신은 이 땅에 태어나 경작받다가 구원받지 못하고 죽은 영혼들 중 일부가 특별한 조건하에서 세상에 나오게 된 경우이지요. 특히 자살의 경우가 이에 해당되는데요, 그렇다고 자살한 영혼들이 다 귀신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공의가운데 특별한 조건하에 사단마귀의 조종을 받는 귀신으로 쓰임받게 되는데 이에 대해서는 차후 구체적으로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지옥사자들은 루시퍼와 함께 타락한 천사들
이처럼 타락한 천사들은 심판 때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 곧 지옥에 가두셨으므로 죽은 영혼들을 지옥으로 끌고 가는 사명을 받았을 때와 같이 특별한 경우에만 이 세상에 나올 수 있습니다.
이들이 타락하기 전에는 천상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지극히 아름다운 형상이었지만 타락하여 저주받은 후에는 더 이상 아름답고 빛난 형상이 아닙니다.
지옥사자들은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칠 정도로 음산하고 시커먼 형체로 사람의 얼굴 모양과 비슷하기도 하고 혹은 각종 가증한 짐승의 탈을 쓴 모양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돼지를 비롯하여 성경에 기록된 가증한 짐승들과 비슷하지만(레 11장) 저주받아 변형된 형상을 지니고 있으며 각종 괴상한 색조와 무늬로 몸을 장식하기도 했습니다.
무시무시한 철갑옷을 입고 군화를 신은 지옥사자의 몸에는 닿기만 해도 살이 찢겨질 것 같은 고문기구들이 달려 있고, 칼이나 창, 채찍 등을 손에 들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옥사자들은 어두움의 세계에서 권세 있는 존재들이므로 그 모습이 위압적이며 움직일 때도 강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많은 사람들은 귀신을 두려워하지만 영안이 열려 지옥사자를 보면 귀신보다 훨씬 공포스러운 형상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옥을 관리하면서 영혼들을 고문하는 지옥사자들
그러면 지옥사자들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일들을 하고 있을까요?
이들은 지옥을 관리하면서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을 고문하는 일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흉악한 돼지탈을 쓰고 온몸을 저미기도 하고 몸에 바람을 넣어 공처럼 부풀려 굴리다가 터뜨리기도 하며 채찍으로 때리기도 합니다. 그 외에도 갖가지 고문을 하는데 어린아이들이라 해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런데 지옥사자들이 어린아이들의 영혼이 갇힌 곳에 와서 찌르고 때리는 것은 고문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재미삼아 하는 일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지옥이 얼마나 참혹한 곳이며 이러한 지옥사자들에 의해 고문을 당하는 것은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를 깨달아 한 영혼도 지옥에 떨어지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그럼 다음장서부터 구체적으로 지옥사자들의 고문 실태을 소상히 밝혀드리겠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3단계에서는 지옥사자에 의해 여러 가지 고문을 당하게 되는데. 이해를 돕기 위해 사람이 고안해 낸 몇가지 고문방법을 살펴보겠습니다.
사람들이 고안해 낸 고문과 비교할 수도 없는 형벌
인권이 보장되지 않았던 시대에는 오늘날 우리가 상상하기도 어려운 혹독한 고문과 형벌의 방법들이 사용되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중세 유럽에서는 죄인들의 자백을 받기 위해 일단 지하 고문실로 끌고 갔습니다. 컴컴한 고문실 바닥에 얼룩진 핏자국을 보며 섬뜩하게 생긴 고문 기구들이 놓은 볼때, 그리고 사방에서 고문받는 비명 소리가 들려올 때 이것만으로도 벌써 공포에 질리게 했지요.
당시에 행해졌던 가장 일반적인 고문 방법은 몸에 딱 맞게 만들어진 금속 조임쇠에 엄지손가락이나 발가락을 집어넣어 으스러질때까지 조이면서 손톱이나 발톱을 한 개씩 뽑습니다. 그 다음에는 팔을 뒤로 꺽은 채 손목을 묶어서 공중에 매달아 올려 온몸이 뒤틀리는 고통을 줍니다.
이 때도 그냥 매달아 놓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공중으로 들어 올렸다 바닥에 놓았다 하는데 그 속도를 천천히 하다가 빨리 하면 고통을 더 극심하게 느낀다는 것입니다. 더 심할 때는 매달린 사람의 발목에 수백 킬로그램의 무게가 나가는 쇳덩이를 묶어 두는데 그러면 온몸의 근육과 마디마디의 관절이 늘어나면서 사지가 찢어지는 고통을 받는 것이지요.
그런데 자백하지 않으면 이제 고문형 의자에다 앉힙니다. 이 의자에는 엉덩이가 닿는 바닥부분은 물론 등받이와 다리 뒤쪽까지 촘촘하게 송곳이 박혀 있지요. 이 의자를 보고 놀란 죄인이 앉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쳐도 우락부락하게 생긴 장정들이 붙잡고 꼼짝 못하게 들어 올려서 꽉 눌러 앉히니 뾰족한 송곳이 전신을 파고드는 고통을 생생히 느껴야 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사람을 거꾸로 매달라 두는데, 이것만으로도 심한 고문이 됩니다. 1시간 가량만 지나도 혈압이 높아지다 못해 머리의 혈관이 터져 눈과 귀와 코로 피가 줄줄 흘러나오고 더 이상 보고 들을 수도 없게 된다고 합니다.
또한 불을 사용하는 고문의 종류에는 사람의 겨드랑이나 발바닥에 촛불을 서서히 갖다 대면서 태우는 것이 있습니다. 겨드랑이를 태우는 것은 그곳이 민감하고 연약해서 다른 신체 부분보다 통증이 극심하기 때문입니다. 발바닥을 태우는 것은 그 고통이 심히 오래 지속되기 때문에 고문의 효과가 좋다는 것이지요.
좀더 심할 때는 쇠장화를 벌겋게 달구어 사람의 맨발에 신기는 경우도 있고 그 쇠장화를 신긴 채로 쇠망치로 내리쳐서 뼈까지 으스러뜨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불에 달군 집게를 가지고 살을 잡아뜯으며 칼로 혀를 도려내고 인두로 입 안을 지지기도 하지요.
결국 죄인으로 인정되어 사형을 시킬 때는 마차 바퀴처럼 생긴 사형틀에 집어넣고 돌려서 산 채로 온몸을 분해시켜 죽이기도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납을 불에 녹여서 펄펄 끓는 액체를 귀와 콧구멍 속으로 부어서 죽이는 경우도 있었지요.
사람들이 행했던 고문에 대해 이 정도만 설명해도 여러분은 몸서리가 쳐지고 더 이상 생각하기도 싫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잔인한 지옥사자들이 루시퍼의 주관아래 고문하는 3단계의 형벌은 얼마나 더 잔혹하겠습니까?
뜨거운 바위에 눌리거나 벌레와 짐승에게 쫓기는 등 1단계와 2단계의 형벌도 견딜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럽지만 지옥사자들이 직접와서 영혼들을 고문할 때는 형벌이 더욱 가혹해집니다.
지옥사자들은 일말의 동정심도 없어서 영혼들이 두려워하며 자비를 구할수록 더 즐거워합니다. 또한 고통스러운 비명 소리를 들으면 오히려 쾌감을 느끼게 되므로 "어떻게 하면 더 잔인하고 고통스럽게 괴롭힐 수 있을까?" 궁리하면서 고문하게 됩니다.
그러니 여러분 자신은 이런 지옥에 들어가서는 결코 안되는 것이요, 더 나아가 한 영혼이라도 더 전도하여 이런 형벌 가운데서 건져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아랫음부의 지옥사자들에 의한 3단계 형벌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일까요?
다음 장을 손에 땀을 쥐며 살펴보도록 합시다.
이곳에 있는 영혼들 중의 하나는 나무에 묶여 온몸이 칼로 저며지는 형벌을 받고 있습니다. 저며낸다는 것은 칼로 연필을 깍을 때 한 꺼풀씩 연필심 주변을 벗겨내는 것처럼, 또는 생선회를 만들 때 생선살을 한 점씩 발라내는 것처럼 도려내는 것을 말합니다.
흉악한 돼지탈을 쓴 뚱뚱한 지옥사자는 살점을 떼어내는 데 쓰려고 여러 가지 고문 도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작고 예리한 칼에서부터 도끼 같은 큰 도구에 이르기까지 많은 도구를 "슥슥" 갈면서 날을 세웁니다. 지옥에서는 도구를 갈지 않는다 해서 칼날이 무뎌지거나 이가 빠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고문받을 영혼들을 더 두렵게 하고자 이렇게 소름끼치는 소리를 내는 것이지요.
고문기구들을 통하여 두려움을 주면서 손끝의 살점부터 베어내
이 영혼은 여러 가지 고문 도구들이 서로 부딪혀 소리를 낼 때, 또한 아주 흉측한 지옥사자가 칼을 갈다가 징그럽게 웃으며 자신을 쳐다볼 때 꼼짝도 못하고 형벌을 기다리면서 얼마나 섬뜩하며 끔찍하겠습니까.
"저 칼로 내 살을 베어낼 것인데...
저 도끼로 내 몸뚱이를 잘라낼 것인데...
이제 어찌할꼬.
그 고통을 어찌 감당할꼬..."
이런 생각을 하면서 공포감으로 숨이 막혀옵니다. 아무리 달아나려고 발버둥 쳐 봐도 단단히 감긴 밧줄이 몸 깊숙이 파고들며 상처가 날 뿐 옴짝달싹할 수가 없다는 것을 거듭 확인할 뿐입니다.
마침내 준비를 마친 지옥사자는 날이 선 도구들을 챙겨 들고 서서히 다가와 연필을 깍는 것처럼 먼저 손끝의 살점을 베어 내기 시작합니다. 살점들이 핏덩어리와 함께 "투둑투둑" 바닥에 떨어지고 열 개의 손톱 역시 살점과 함께 잘려 나가 버리지요.
잠시 후면 손가락이 없어지고 손목과 팔뚝, 그리고 어깨까지 저며내서 팔은 뼈만 남게 됩니다. 이제는 종아리와 허벅지의 살점이 한 조각씩 잘려 나갑니다.
온몸의 살을 생선회처럼 저미고 모든 장기들을 드러낸 후
그리고 다음에는 배를 저미는데 배를 저며 들어가면 결국 오장육부가 드러납니다. 지옥사자는 창자를 잡아당겨 "획"하고 집어 던집니다. 이처럼 다른 장기들도 뜯어내 팽개치거나 갖가지 도구로 갈기갈기 찢어 버립니다. 이 때까지 고문받는 영혼은 두 눈을 똑똑히 뜨고 자기 살이 저며지고 살점들이 땅에 떨어지는 것과 장기가 버려지는 것을 다 보고 있습니다. 만일 누군가 여러분을 꽁꽁 묶어 놓고 칼로 여러분의 손등에서 손톱만큼씩 살점을 도려낸다고 상상해 보십시요.
그 칼날이 몸에 닿을 때의 공포와 도려내지는 고통, 그리고 도려낸 상처에서 흐르는 피를 보면서 얼마나 끔찍하고 괴롭겠습니까? 그런데 이 영혼은 어느 한 부분만이 아니라 온몸이 저며지고 뱃속의 장기까지 다 꺼내지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잠시 생선회를 떠올려 보십시요. 횟집에 가서 생선회를 먹을 때 생선 모양 그대로 접시에 올라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생선에서 뼈와 살을 분리하여 살만 저어놓은 것이지요. 이 때 접시에 있는 생선의 아가미가 움직이며 살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뼈와 살을 갈라내도 숨이 붙어 있다고 해서 생선회를 뜨는 사람이 "고기야! 너 참으로 고통스럽겠구나." 하면서 일할 수 있을까요? 아마 그렇게 생각한다면 너무나 끔찍해서 살을 저미는 일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만약 내 부모나 자녀가, 아내나 남편이, 또는 일가친척, 친구가 구원받지 못하여 지옥에 떨어진다면 이렇게 살점을 도려낼지라도 숨이 붙어 있는 생선처럼 일말의 동정심도 없는 지옥사자들에 의해 고문당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여 열심히 전도하시기 바랍니다.
뾰족한 송곳으로 눈을 찌르고 얼굴과 목의 살을 저며내
온몸의 살을 생선회처럼 저미고 모든 장기들도 다 꺼낸 흉측한 지옥사자는 칼을 놓고 송곳을 집어듭니다. 이제 송곳으로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요? 이미 이 영혼은 자신이 당할 일을 잘 알고 있습니다. 처음 당하는 고문이 아니라 아랫음부로 끌려온 이후 지금까지 수백 번, 수천 번도 더 당해 왔기 때문에 고문하는 순서와 방법을 훤히 알고 있는 것이지요.
지옥사자는 손에 들려 있는 뾰족한 송곳으로 영혼의 눈동자를 향해 서서히 다가오다가 마침내 눈동자를 깊숙이 찌른 채 그대로 박아 놓습니다. 송곳이 서서히 다가오는 것을 보고 있는 영혼은 얼마나 무섭고 떨리겠습니까? 또한 뾰족한 송곳이 눈을 찌르고 파고들 때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났는가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아직 얼굴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양 볼과 코와 이마와 온 얼굴을 저며내고 귀와 입술은 물론 목의 살까지 저며내는데, 목은 점점 가늘어지다가 결국에는 댕강 부러져 나가지요. 이렇게 해서 전체의 과정이 한번 마쳐지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고문의 끝이 아니라 다음 번 고문의 새로운 시작일 뿐입니다.
반복되는 고문으로 공포와 고통 속에 비명조차 지르지 못해
잠시 후면 지옥사자가 저며낸 살들이 마치 거짓말처럼 새로 돋아나며 사지의 형태가 살아나고 원래의 몸으로 회복됩니다. 이처럼 고통이 잠시 멎어 회복된다고 해도 앞으로 또 이어질 고통을 생각하기 때문에 고통은 가중될 수 밖에 없습니다.
엄청난 고문의 고통이 생생하게 뇌리에 남아 있는데 다시 "삭삭" "쓱쓱" 하면서 칼 가는 소리와 연장들이 부딪히면서 내는 소름끼치는 소리가 들려 옵니다. 또다시 악몽 같은 기억을 가지고 도구들을 갈고 있는 흉악한 돼지 형상의 지옥사자들을 지켜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새롭게 온몸이 저며지는 고통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고문은 반복되어도 만성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복되어질수록 더욱 큰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니 형벌을 받는 영혼은 아예 살려 달라는 애원도 못하며 어떤 비명조차 내지를 못합니다. 다른 영혼들이 지르는 비명소리와 곳곳에서 살려 달라는 울부짖음, 철과 철이 부딪쳐서 나는 소름끼치는 소리를 들으며 이 영혼은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아랫음부의 영혼들은 백보좌 대심판을 받아 불지옥에 던져질때까지 계속하여 거듭되는 형벌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니 더욱 고통이 큰 것입니다.
양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은 상대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 죄책감을 느끼게 됩니다. 또한 미워했던 사람이라도 극도로 비참한 처지가 되면 일말의 동정심이 생기고 미워했던 감정도 사그라지게 되지요.
그러나 양심에 화인 맞은 사람은 상대의 고통에 무감각하며 자기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아무리 끔찍한 일이라도 저지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생체실험에 쓰인 사람들처럼 쓰레기 취급을 당하는 영혼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치하의 독일이나 일본, 이태리 등 일부 국가에서 극비리에 행해진 생체실험에서는 살아 있는 사람을 실험용 생쥐나 토끼처럼 실험대상으로 사용했습니다.
예를 들면, 건강한 사람에게 암세포를 이식시키거나 질병균을 감염시킨 다음 얼마큼 견디는지, 어떤 증상을 보이며 죽어가는지 관찰하는 것입니다.
또한 정확한 자료를 얻기 위해 살아 있는 사람의 배를 갈라 내장을 살펴보거나 싱싱한 뇌를 관찰하기 위해 두개골을 벗겨냅니다. 급속도로 기온을 낮춰 사람을 꽁꽁 얼려 보는가 하면, 사람을 물에 집어넣고 점점 온도를 올려 가며 고온에서 얼만큼 견딜 수 있는가를 실험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여러가지 실험을 하다가 더 이상 실험 재료로 쓸모가 없어지면 고통 속에 죽어 가도록 내버려 둡니다.
이런 생체실험 대상보다 더욱 비참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바로 지옥에 속한 아랫음부 형벌을 받는 영혼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사람으로서의 존엄성과 가치를 상실했으므로 폐기처분된 쓰레기나 배설물같이 취급당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쓰레기를 불쌍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지옥사자들은 고문받는 영혼들을 동정한다거나 사정을 봐 주는 일이 없습니다. 고통을 주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일도 없으며 어느 정도 고문했다고 해서 "이만하면 됐다" 하는 법도 없습니다.
몸에 바람을 넣으면 뼈가 부러지고 살이 터지는 고통이 있어
그러므로 지옥사자들은 쓰레기처럼 비참한 처지에 있는 영혼들을 장난감 다루듯이 하며 심지어 공놀이를 하기도 합니다. 몸에 바람을 불어넣어 공처럼 부풀려서 탱글탱글해지면 발로 굴리고 차면서 즐기는 것입니다.
얼핏 듣기에는 그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운데 길고 납작하게 생긴 사람의 형상이 바람으로 부풀어 올라 공처럼 만들어진다면 그 몸의 내부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내장과 허파가 부풀어 오름에 따라 내장을 감싸고 있던 갈비뼈와 척추가 차례로 부러져 나갈 뿐만 아니라 탱탱하게 부풀어 오른 피부는 터지도록 늘어나 살이 찢어지는 아픔을 느끼게 됩니다.
지옥사자들은 이렇게 부풀어 오른 영혼을 굴리고 놀다가 지루해지면 뾰족한 창끝으로 배를 찔러 터뜨려 버립니다. 팽팽했던 풍선이 터지고 나면 갈기갈기 찢어진 고무조각들이 흩어지는 것처럼 이 영혼도 피와 살 조각들이 사방으로 튀면서 찢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잠시 후면, 다시 회복되어진 몸으로 원래 있던 형벌의 자리에 돌아가게되니 얼마나 비참한 일입니까? 이들이 이 땅에서 살아 있을때는 그래도 누군가의 사랑을 받았고 사회적 지위와 권세가 있었으며 기본적인 인권이라도 주장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 오면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닙니다. 존재의 가치도 없으며 어떠한 권리도 없고 굴러다니는 자갈만도 못한 존재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전도서 12장 13~14절에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찌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 말씀하신 대로 이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지옥사자들의 장난감으로 전락해 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켜야 하는 사람의 본분을 행하지 못하면 더 이상 소중한 영혼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게 되니 지옥에 속한 아랫음부에서 참혹한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우쳐야 하겠습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 총독 빌라도는 지옥에 속한 아랫음부에서 3단계의 형벌 중 채찍에 의한 형벌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면 빌라도가 이러한 형벌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이 선한 분이심을 알면서도 십자가의 처형을 허락한 빌라도
빌라도는 유대 지방을 다스리는 책임자였기에 예수님을 처형하려면 그의 허락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는 총독으로서 유대지방을 통치하기 위해 많은 염탐꾼들을 곳곳에 파견했으므로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사와 표적은 물론 주님이 행하신 설교 내용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을 통해서 예수님은 사랑을 가르치며 병자들을 치료하고 하나님에 대하여 알리는 등 선한 일만 한다는 보고를 받았기에 빌라도는 예수가 좋은 사람인 것을 알았습니다.
또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시기하여 죽이고자 한다는 것도 알았기에 빌라도는 최대한 예수님을 살리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원하는 대로 들어 주지 않으면 민란이 일어날 것을 두려워하여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 주고 말았지요.
자신이 다스리는 지역에서 민란이 일어나면 황제 앞에 책임을 져야하고 자칫하면 자신의 생명까지 위협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비겁하여 아무 죄도 없으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 준 사건이 결국 빌라도가 받을 지옥의 형벌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빌라도의 군병들에게 끌려간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온몸에 채찍을 맞으셨는데 빌라도 역시 지옥사자들에 의해 채찍에 맞고 있습니다.
빌라도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지옥사자들에게 채찍을 맞고
예수님께서 맞으셨던 채찍은 긴 가죽 채찍 끝에 쇳덩어리나 뼛조각이 달려 있어서 한 번 내리치면 온몸을 휘감으며 살을 찢게 되고 채찍 끝에 달린 쇳덩어리는 살점 깊숙이 파고듭니다. 이렇게 몸에 박혀 있는 채찍을 잡아채면 채찍이 박혔던 주변의 살점이 함께 떨어져 나오게 되지요.
아랫음부의 빌라도 역시 이와 비슷한 채찍으로 맞고 있는데, 이 땅에서 사람들이 빌라도의 이름을 언급할 때마다 지옥사자는 빌라도를 향해 채찍을 휘드르고 있습니다.
크리스쳔이라면 주일날 예배를 드리거나 기도회를 할 때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하게 되는데 그 중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라는 구절을 암송할 때마다 빌라도는 채찍에 맞는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더구나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그의 이름을 말할 때는 채찍의 속도가 정신없이 빨라지고 강도도 점점 더 세어집니다. 이런 경우에는 주변에 있는 다른 지옥사자들이 빌라도의 고문을 지원하려 몰려오지요.
이미 다 찢어져 너덜너덜해지고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지옥사자들이 서로 경쟁하듯 채찍을 휘두르니 살점이 떨어지다 못해 허옇게 뼈가 드러나고 나중에는 뼛속까지 채찍 끝이 파고들어 골수까지 끌어내게 됩니다.
저주의 상징으로 혀가 잘려 고통을 호소하지도 못해
빌라도는 고문을 당하며 "제발 내 이름을 부르지 마소서. 그 때마다 내가 괴로움을 겪나이다."라고 호소하지만 소리내어 고통을 호소할 수도 없습니다. 예수님께 사형을 언도했던 그 혀가 저주받아 이미 뽑혀 버렸기 때문입니다. 고통스러우면 비명이라도 질러야 하는데 혀가 잘려 소리도 낼 수 없으니 그 고통이 더한 것입니다.
특이한 것은 지옥사자들의 고문을 통해 몸이 잘릴 때는 곧 다시 재생되게 마련인데 빌라도의 혀는 그 저주의 상징으로 한 번 뽑힌 채 다시는 재생되지도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말도 못하는 빌라도가 자기 이름을 불리지 않기를 아무리 간절히 소원한다고 해도 마지막 대심판의 그 날까지 그의 이름은 온 세상에 저주받은 이름으로 불려지고 또 불려질 것입니다. 그때마다 채찍에 맞는 빌라도의 고뇌는 더욱 깊어만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가운데 빌라도가 3단계의 채찍 형벌을 받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을 드리자면 더 많은 지면이 필요하지만, 빌라도의 형벌에 대해서는 여기까지만 설명을 드림을 양해바랍니다.
여기서 잠시 3단계 형벌을 받게 되는 경우를 설명드리오니 반듯이 마음에 양식삼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은 옳지 않은 일인 줄 알면서도 범죄하고, 또한 남에게 해서는 안될 말인 줄 알면서도 자신의 유익을 위해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상대를 모함하고 거짓증인이 되며 중상모략하거나, 악한 자들과 연합해서 사람을 죽이고 고통스럽게 하는 사람, 비겁한 자가 되고 배신하는 사람들은 빌라도와 같이 지옥에 속한 아랫음부에서 3단계의 형벌을 받는다는 것을 명심하시기를 바랍니다.
빌라도가 손을 씻으며 자신의 비겁한 행동을 유대인들의 탓으로 돌린 것처럼 자신의 죄를 상황과 조건 탓으로 돌리며 내 탓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악행에 대한 책임을 결코 남에게 돌릴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자유의지가 있어 선악간에 스스로 선택할 수 있지만 그 결과에 대해서는 반드시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누구든지 자유의지에 따라 주님을 믿을 수도 있고 믿지 않을 수도 있으며, 주일을 온전히 지키든지 그렇지 않든지, 온전한 십일조를 하든지 하지 않든지 그것은 스스로가 결정할 문제입니다. 그러나 선택의 결과는 "천국의 행복을 누리게 될 것인가 아니면 지옥의 형벌을 받게 될 것인가" 둘 중에 하나입니다.
또한 결과는 전적으로 자신의 책임이므로 "나는 부모님이 핍박하여 하나님을 떠났다" 혹은 "나는 남편 때문에 주일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고 십일조를 하지 못했다" 하면서 남의 탓으로 돌린다고 해도 인정받지 못합니다. 진정 믿음이 있다면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켜 행했을 것이기 때문이지요.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때가 늦어지기 전에 잠든 영혼을 깨우시려고 이처럼 지옥에 대해 알려 주시며 더욱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가운데 들어오기를 원하십니다.
따라서 신속히 하나님을 찾고 만나는 것은 물론 전도에 힘쓰며 마음의 악을 버리고 성결된 아름다운 주님의 신부가 되어 다시 오실 주님을 당당히 맞이할 수 있기를 부탁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지옥의 말씀을 선포하시는 까닭은 불신자와 범죄한 사람들을 저주하시기 위함이 아닙니다!!!
무거운 죄의 짐을 지고 원수 마귀 사단의 종이 되어 살아가는 영혼들을 어두움의 속박에서 해방시키고 지옥으로 가는 영혼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지옥에 관한 말씀을 힘들게 여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던 사람은 이제부터라도 영접하면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동안 믿는다 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살지 못했다면 이제부터 돌이켜 지켜 행하면 됩니다.
그리고 아직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을 위해서는 구원받을 수 있도록 더욱 사랑으로 기도해 줄때 여러분 안에는 항상 평안이 있고 여러분의 장래에는 소망으로 가득할 것입니다.
이번에는 지옥에 속한 아랫음부에서 3단계의 형벌을 받는 영혼들 중에서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불순종을 거듭하며 끝내 회개하지 않았던 사울 왕
처음 왕위에 오를 무렵에 사울은 하나님 앞에 겸비하게 행했지만 왕이 된 후에는 점차 교만해져 하나님께 불순종하며 범죄를 거듭하다가 결국은 버림받고 말았습니다.
사람이 범죄하여 하나님 징계를 받게 될 때에는 변명하며 죄를 숨기려고 할 것이 아니라 속히 잘못을 돌이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회개를 받으시고 용서의 길을 열어 주시는 것이지요. 그러나 사울 왕은 회개하고 돌이킨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변명하고 남의 탓을 하며 잘못을 숨기려고만 했습니다. 더구나 불순종한 자신을 대신하여 하나님께서 다윗을 택하신 것을 알게 되자 그를 일평생 원수로 여기며 죽이려고 쫓아다녔습니다.
심지어 다윗을 도와주었다는 이유로 하나님의 제사장들을 살해하기까지 했으니 이러한 행위는 하나님을 정면으로 대적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이처럼 사울 왕은 하나님께 불순종하며 계속 악행을 쌓아 갔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장 그를 멸하지 않으셨습니다. 죄 없는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다니던 긴 시간 동안에도 그대로 살려두셨습니다. 이는 사울 왕의 핍박을 통해 다윗이 큰 그릇으로 나오도록 만드시기 위함이며, 동시에 사울에 대해서도 오래 참으시고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만일 우리가 범죄할 때 하나님께서 당장 죽이신다면 살아남을 자가 없을 것입니다. 용서하고 또 참고 참으시다가 결국 돌이키지 않으니 하나님께서 외면하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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