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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쓰러지는 현상에 대하여(장봉운 목사님) 조회수 : 5260
  작성자 : 콘돌 작성일 : 2010-06-10

예수께서 잡히시던 날 밤 병정들이 다가오자 주님은 누구를 찾느냐고 묻습니다. 병정들은 예수를 찾는다고 대답하자 “내가 그 사람이다.”라고 말씀하시자 병사들이 뒤로 물러나 땅에 쓰러졌습니다.(요 18:6) 바울이 몇 사람들과 함께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으려고 다메섹으로 달려갈 때 길 위에서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함께 가던 사람들을 향해서 햇빛보다 더 밝은 빛이 비춥니다. 그러자 이들 일행은 땅에 엎어졌습니다.(행 26:14) 누가복음 4장에는 주님이 갈릴리 회당에서 가르치시는 장면이 소개됩니다. 그 때 귀신 들린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큰 소리로 ‘...당신은 하나님의 거룩한 분입니다.’라고 소란을 피우자 주님이 꾸짖었습니다. 그러자 귀신이 떠나면서 그 사람을 쓰러뜨렸지만 그는 한 군데도 상하지 않았습니다.(눅 4:31~35) 간질병에 들린 아이의 부모가 주님에게 와서 그 증상을 설명합니다. 불에도 자주 넘어지고 물에도 빠지곤 한다고 하면서 불쌍히 여겨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주님은 귀신을 꾸짖자 귀신이 나가고 아이는 그 때부터 온전해졌습니다.(마 17:15)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주님의 환상을 볼 때에 그 모습이 해가 힘 있게 빛나는 것 같았고 그 모습을 본 그는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었습니다.(계 1:17) 이상이 성경에 기록된 쓰러지거나 넘어지는 것과 관련된 사건입니다.

오늘날 부흥회나 치유 집회에서 사람들이 쓰러지거나 혼절하는 장면을 봅니다. 테드 밴트리의 치유집회의 동영상에서 보듯이 안수 받은 사람이 쓰러지는 장면을 볼 수 있는데 안수하는 사람이 밀거나 쓰러뜨리는 경우도 있지만 저절로 넘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쓰러지는 역사를 일으킨 대표적인 사역자로 인천 숭의교회의 이호문 목사가 있고, 근래에는 많은 사역자들이 쓰러뜨리는 역사를 행합니다. 그런데 이 역사(manifestation)에 대해서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오해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앞에 소개한 네 가지 사건에서 보듯이 주님이 잡히시던 날 밤에 있었던 장면은 주님의 권능으로 인해서 병사들이 쓰러진 것입니다. 이 장면에서 베드로는 칼을 빼어 병사의 귀를 베는 일을 저지릅니다. 주님은 그런 베드로에게 “너는 내가 나의 아버지께 당장에 열두 군단 이상의 천사들을 내 곁에 세워두시기를 청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그렇게 되면 이런 일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기록한 성경 말씀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마 26:53~54) 주님은 이런 권능을 소유하신 분임을 나타내십니다. 스스로 얼마든지 방어할 수 있는 권세가 있음을 병사들이 쓰러지게 함으로써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보듯이 쓰러지는 것은 하나님의 권세에 의해서, 그 사역자를 군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행하는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이 다메섹에서 동행한 사람들과 함께 밝은 빛 가운데서 쓰러졌습니다. 이 역시 하나님의 권능이 임하는 앞에서 피조물이 쓰러지는 것입니다. 요한 역시 환상을 보는 가운데 쓰러졌습니다. 밝은 빛 가운데 나타나신 주님을 보는 경우 우리는 그 권능에 의해서 기절하고 맙니다. 빛이 아니더라도 주님의 영이 임하면 우리는 정신을 잃거나 거의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비몽사몽’(trance)의 황홀경에 빠지게 됩니다. 베드로가 제9시 기도시간에 옥상에 올라가 기도할 때 그는 잠든 것과 같은 상태에 빠지면서 광주리 환상을 봅니다. 스르르 잠이 드는 것과 같은 몽롱한 상태가 되면서 환상이나 꿈을 통해서 계시를 받게 되지요. 이 경우에 쓰러지는 것입니다. 바울의 경험에서는 함께 동행한 사람들이 다 쓰러졌지만 주의 음성을 들은 사람은 오로지 바울 한 사람 뿐이었고 다른 사람들은 천둥소리 같이 들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그 내용을 알 필요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자주 천둥소리처럼 들리게 됩니다.(요 12:29)

이 두 가지 사건은 계시와 연관된 내용을 담습니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경험하는 내용은 아닙니다. 우리가 일상의 기도 시간에 흔하지는 않지만 경험하는 황홀경은 이런 몽롱함을 동반합니다. 기도하다가 스르르 잠들어버려 기도를 망쳤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특별히 잠들만한 육체적인 피곤도 없었는데 그만 스르르 잠이 들어버립니다. 얼마를 잤는지는 알 수 없으나 기도를 전혀 하지 못했기 때문에 괴로워합니다. 이런 일들이 자주 반복되는 경우에 이는 육체적 잠이 아니라 환상을 보기 위한 전 단계일 경우가 많습니다. 환상을 보기 위해서는 잠드는 것과 흡사한 나른함이 찾아옵니다.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는 한 수단으로써 넘어지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앉아서 기도하기 때문에 쓰러지지 않지만 강한 성령의 임재가 이루어지면 잠드는 것과 같이 오랫동안 정신을 잃고 쓰러집니다. 저는 방에서 앉아서 기도하는 가운데 자주 이런 잠드는 것과 같은 임재 상태에 들어가는데 저의 아내는 제가 기도하지 않고 잠만 잔다고 핀잔을 합니다. 물론 잠이 들 때도 많이 있습니다.

잠이 드는 것과 같은 임재에 들어간다고 해서 다 계시를 받거나 어떤 영적 경험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이런 것을 영 안에서 쉬는 것이라고 설명하고자 하는데 이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시는 것입니다.(시 127:2) 표준새번역은 “잠을 자는 동안에도 복을 주신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쓰러져 아무런 느낌이나 말씀을 받지 못했다고 해도 그 자체로는 영안에서 쉼을 얻으며,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하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번제를 드릴 때 그는 기다리다가 지쳐서 잠이 듭니다.(창 15:12) 하나님의 위로는 이렇게 비몽사몽과 같은 잠결에 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머지 두 사건은 귀신들림과 연관이 있는 내용입니다. 한 경우는 간질병인데 그 때문에 자주 아무데서나 쓰러집니다. 그 행위를 귀신이 쓰러지게 한다고 본 것입니다. 귀신들리면 자주 쓰러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가버나움 회당에서 소리 지르는 사람은 귀신들림이 드러난 사람입니다. 그가 주님으로부터 축사를 당하자 쓰러졌지만 다치지 않았고 귀신은 나갔습니다. 귀신 들린 사람의 경우 귀신이 나가면서 여러 가지 행위를 하는데 그 가운데 쓰러지게 하는 행동이 있습니다. 귀신들린 사람이거나 마귀의 영향을 받는 사람은 축사하는 사역자에게 오면 그 증상을 드러냅니다. 멀쩡하던 사람도 축사자를 만나면 그 속에 있던 귀신이 겉으로 드러나게 되며 따라서 평소에 하지 않던 행동을 하게 됩니다. 심하게 귀신 들린 사람은 우리가 잘 알듯이 미친 사람처럼 행동하지만 초기인 사람은 그 증상이 노이로제나 우울증 정도로 가벼워 주변 사람들이 눈치를 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축사자를 만나면 거친 행동이 나타나며 귀신의 본성을 드러냅니다.

귀신을 쫓아내면 쓰러지고 깊은 잠에 빠진 것처럼 한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합니다. 이 경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귀신이 쫓겨 나가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는 치유와 연관이 있습니다. 귀신에 의한 질병의 경우 귀신이 쫓겨나감으로써 치유가 이루어지며, 그렇지 않은 자연 질병의 경우 치유가 이루어지는 경우에 쓰러지기도 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성경이 자세하게 언급하지 않고 있지만 치유사역을 행한 경험으로 보면 온 몸에 힘이 빠지는 것 같은 나른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저는 공개적인 집회에서 치유를 행한 경험은 없지만 개별적인 치유의 경우 환자를 눕게 합니다. 될수록 환자를 편안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방안에서 치유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교회 안에서도 기도실에서 행하기 때문에 굳이 서서 할 필요가 없었지요. 그러므로 방에 편안히 눕거나 앉아서 치유를 행합니다. 그런 경우 환자는 나른하면서도 평안한 기분이 들고 때로는 너무 뜨거워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라고 말합니다.

온 몸이 진동하거나 뜨거운 열기로 땀이 나서 몸이 다 젖는 경우가 있는데 이 때 서서 치유를 받는다면 아마도 쓰러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대규모 치유 집회에서는 여러 사람들을 다루어야 하기 때문에 서서 받을 수밖에 없는데 이 경우 전율이나 힘이 빠지는 나른함이나 뜨거움으로 인해서 쓰러지게 되는 것이지요. 정신을 잃지는 않지만 한동안 일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귀신 들림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자연적인 질병의 치유에서 일어날 수 있는 쓰러짐은 영적인 것과 어떤 연관성은 없습니다. 단순히 치유에서 나타나는 신체적 증상일 뿐이며, 신앙의 성숙이나 믿음과도 별로 상관이 없는 것이지요.

성경에는 자세한 언급이 없지만 천사와 연관된 내용이 있습니다. 천사의 실체와 접촉할 때 나타나는 증상으로써 쓰러지거나 정신을 제대로 못 차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에스겔이 경험한 것과 같이 주의 천사가 자신의 영을 이끌어 어떤 제 삼의 장소로 이동시킬 때 성경은 다양한 표현을 사용합니다. “주의 영이 나를 들어”(겔 8:3), “주의 영이 나를 데리고”(겔 11:1), “주의 사자가 끌어내어”(행 5:19) 등입니다. 영이 몸을 떠나면 우리는 죽습니다. 따라서 에스겔이 경험한 것은 분명 죽은 자처럼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경우 헤롯에 의해서 옥에 갇혔을 때 그가 천사의 도움으로 풀려나게 됩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그 당시 제 정신이 아니어서 천사가 하는 것을 환상으로 착각했다가 천사가 떠난 다음에야 비로소 정신이 들어 사실임을 깨닫게 됩니다.(행 12:1~11)

쓰러지기까지는 아니어도 정신이 몽롱해지고 의식이 없이 행동하는 경우 쓰러지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다리에 힘이 빠지면서 온몸이 나른해지고 그래서 쓰러집니다. 이는 ‘영의 임재’와 ‘질병의 치유’와 ‘귀신이 쫓겨나가는 충격’으로 그런 행동이 일어납니다. 집회에서 인도자의 안수를 받아서 쓰러지는 경우와 사역자의 명령에 의해서 쓰러지는 경우 등 다양한 형태의 쓰러짐이 나타납니다. 이 모든 쓰러짐은 믿음과 신앙의 성숙과는 연관이 없으며, 따라서 누구든지 쓰러질 수 있으며, 집회 중이 아니어도 개인기도 중에 쓰러지는 것과 같은 잠결에 빠지기도 합니다. 영의 임재 중, 주의 천사가 자신을 만지는 경우 쓰러지며 잠들게 되기도 합니다. 그런 가운데 주의 위로와 계시가 임하게 되며 특별한 영적 경험을 얻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쓰러지는 사람은 별다른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쓰러지는 것을 기대할 것도 아니며, 쓰러졌다고 해서 믿음이 약하거나 영이 약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입니다. 이런 행동은 다만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나타내는 한 수단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집회에서 빈번히 나타나는 쓰러짐은 큰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의 위로로 보는 것이 온당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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